트럼프 “유엔서 3가지 치욕, 우연 아닌 사보타주” 조사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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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프롬프터 고장에… 음향시설 불량 거론하며 ‘음모론’
“비밀경호국이 조사” 으름장도
유엔 “美대표단-백악관의 실수” 반박… 역할론-예산 문제 이어 갈등 커질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위쪽)가 23일 뉴욕 맨해튼의 유엔 본부에서 고장난 에스컬레이터를 걸어서 올라가고 있다. 뉴욕=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위쪽)가 23일 뉴욕 맨해튼의 유엔 본부에서 고장난 에스컬레이터를 걸어서 올라가고 있다. 뉴욕=AP 뉴시스
“어제 유엔에서 정말 치욕적인 일이 벌어졌다. 하나둘도 아니고 세 가지나 되는 끔찍한 사건이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유엔의 삼중 사보타주(시설이나 계획의 정상적 운영을 방해하려는 고의적 파괴)였다.”

2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에스컬레이터와 프롬프터 고장, 음향시설 문제를 거론하며 유엔 측에 즉각적인 조사를 요구하겠다고 트루스소셜을 통해 밝혔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6년 만에 유엔 총회를 찾았는데, 회의장으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에스컬레이터가 멈추고, 연설문이 띄워져야 할 프롬프터가 먹통이 되는 등 낭패를 겪은 바 있다. 이 사건들이 모두 누군가가 고의로 저지른 것이란 일종의 ‘음모론’을 제기한 것이다.

그간 유엔의 역할과 예산 지원 등을 놓고 갈등을 빚어온 양측의 갈등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 트럼프 분노케 한 유엔의 에스컬레이터-프롬프터-음향시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을 분노케 한 첫 번째 사건은 유엔 총회장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는데 채 2초도 되기 전에 돌연 에스컬레이터가 멈춘 것. 결국 두 사람을 비롯한 미국 측 인사들은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철제 계단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얼굴을 부딪치며 넘어지지 않은 게 놀랍다”며 “난간을 꽉 잡지 않았으면 큰 사고가 났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연설 전날 영국 더 타임스가 쓴 기사를 근거로 사보타주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더 타임스가 “유엔 직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도착하면 예산이 없어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끄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고 농담을 했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때에도 연설문을 띄워줘야 할 프롬프터가 작동하지 않자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프롬프터가 다시 가동되기까지 약 15분 동안 연단 위 종이 연설문을 토대로 말을 이어가야 했다. 그는 “전 세계 수백만 시청자와 주요 지도자들 앞에서 칠흑같이 어두운 프롬프터를 보며 ‘대체 여긴 어떤 곳이지’ 하고 생각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이 끝난 뒤 또 다른 사보타주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의장의 음향이 완전히 꺼져 정상들이 ‘통역기를 끼지 않는 한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고 했다”며 “멜라니아에게 내 연설이 어땠냐 물으니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어 “유엔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즉각적 조사를 요구할 것”이라며 “비밀경호국(Secret Service·SS·미 대통령 경호 담당 기관)이 조사 중이며 에스컬레이터의 모든 보안 영상과 비상 정지 버튼 자료도 반드시 보관해야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 트럼프 행정부, 의회가 승인한 유엔 지원금도 취소

논란이 커지자 유엔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직후 이례적으로 스테판 뒤자리크 대변인 명의로 해명 자료를 냈다. 이 자료에서 유엔은 “조사 결과 에스컬레이터가 멈춘 건 내장된 안전장치가 작동했기 때문이며, 미국 대표단의 촬영기사가 대통령 부부보다 먼저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는 과정에서 실수로 안전 기능을 작동시켰을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미국 대통령의 프롬프터 작동은 백악관에서 담당한다”고 음모론에 반박했다.

그러나 백악관은 “대통령 내외가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는 것을 유엔에서 누군가가 고의로 막았다면 그 사람은 즉시 해고되고 조사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 “프롬프터 문제 역시 유엔이 프롬프터 설치 시간을 연설 직전에야 줬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반발했다.

최근 유엔은 트럼프 행정부가 유엔에 대한 예산 지원을 거부하면서 전례 없는 자금난에 시달려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유엔 회비 납부를 거부했고, 2025년 회비와 평화 유지 활동을 위해 의회가 승인한 약 10억 달러의 지원금도 취소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다자 간 외교의 효과와 필요성에 대한 실질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상 트럼프 행정부에선 유엔에 대한 지원이 없을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유엔 총회#사보타주#유엔 조사 요청#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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