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남미 마약 카르텔과의 전면전을 공식화하며 이들을 테러 조직 수준의 비국가 무장집단으로 규정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주 미 의회에 보낸 기밀 통보문을 통해 미국이 카르텔과 무력 충돌 상태에 있다고 선언하고, 이들과 연관된 밀수업자들을 불법 전투원으로 지정했다고 2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통보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마약 밀수에 관여하는 카르텔을 비국가 무장집단으로 판단했으며, 이들의 행위가 “미국에 대한 무력 공격을 구성한다”고 했다. 특히 “미국 및 우방국 시민과 이익에 대한 적대 행위들의 누적 효과에 근거해 대통령은 미국이 이들 지정 테러 조직과 비국제적 무력 충돌 상태에 있다고 결정했다”고 명시했다.
이번 통보는 지난 9월 카리브해에서 미 특수부대가 베네수엘라 선박 3척을 공격해 탑승자 17명 전원을 사살한 군사작전의 법적 근거를 보강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공격이 ‘자위권’ 행사이며, 공격 대상이 테러 조직으로 지정된 카르텔을 위해 마약을 밀수하고 있었다고 주장해왔다.
통보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군의 선박 공격이 고립된 자위 행위가 아닌 지속적이고 활동적인 분쟁의 일부라고 규정했다. 지난달 15일 특수부대가 공격한 선박의 탑승자 3명을 사살한 것과 관련해서는 이들을 불법 전투원으로 지칭했다.
국제법상 무력 충돌 상태에서는 적 전투원이 당장 위협을 가하지 않더라도 합법적으로 살해할 수 있다. 또 재판 없이 무기한 구금하며, 군사법정에서 기소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이러한 전시 권한을 주장하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매년 수만 명의 미국인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카르텔이 “불법적으로 매년 수만 명의 미국 시민을 직접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나 켈리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치명적인 독을 우리 해안에 들여오려는 자들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전시법에 따라 행동했다”며 “카르텔에 맞서 싸우고 더 이상 미국인을 죽이지 못하도록 이 국가 안보 위협을 제거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과다복용 사망 급증은 멕시코에서 유입되는 펜타닐에 의한 것으로, 행정부가 집중 공격하고 있는 베네수엘라발 밀수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보문에는 특정 카르텔의 이름이 명시되지 않았으며, 특정 용의자가 군사 공격 대상이 될 만큼 충분히 카르텔의 범죄 행위와 관련되어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對) 카르텔 작전을 공식적인 무력 충돌로 규정한 것은 자신이 비상 전시 권한을 보유한다는 주장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로 분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육군의 전 전쟁법 선임 고문이었던 제프리 콘 변호사는 “마약 카르텔은 미국에 대해 ‘적대 행위’에 관여하고 있지 않다”며 “위험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무력 공격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것은 법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산산조각 내는 것”이라며 “대통령의 조치는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국무부 출신의 무력 충돌법 전문가인 브라이언 피누케인도 “미국이 비국제적 무력 충돌 상태에 있다고 볼 만큼 그들이 실제로 조직화한 무장 집단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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