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억 달러 투자 발표 열흘만에… 재계 “美투자가 곧 리스크”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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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공장 한국인 300여명 구금]
한미 경협 상징 조지아서 날벼락… “기술자 다 잡혀가 공장 어떻게 짓나”
韓 10년새 美투자 3.7배로 늘리고… 직간접 일자리 80만개 만들어
“美사업 한국 기업들에 트라우마”

재계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지금까지 대규모 대미 투자를 하며 미국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지만 돌아온 것은 한국인에 대한 집단 구금”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5일 조지아주 엘라벨 현대자동차 공장 부지에 있는 중장비 위에 성조기가 걸려 있다. 엘라벨=AP 뉴시스
재계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지금까지 대규모 대미 투자를 하며 미국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지만 돌아온 것은 한국인에 대한 집단 구금”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5일 조지아주 엘라벨 현대자동차 공장 부지에 있는 중장비 위에 성조기가 걸려 있다. 엘라벨=AP 뉴시스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에서 한국인 집단 구금 사건이 터지면서 이 공장의 가동 일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6일(현지 시간) 이곳에서 만난 한 직원은 “공장 건물은 95% 정도 완공됐고 내부 설비는 반쯤 진행된 상황”이라며 “막판 스퍼트를 위해 LG에너지솔루션의 최정예 기술자 팀이 와 있었다. 그 사람들이 다 잡혀갔으니 이제 저 공장을 누가 짓고 운영할 수 있겠냐”고 힘없이 말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 진출한 다른 국내 기업들도 허탈감에 빠진 건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관세 압박에 대규모 추가 투자를 약속했는데, 이제는 “미국 투자가 곧 리스크”라는 자조적인 평가가 나온다. 한미 정상회담과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로 어렵게 불씨를 살려 놓은 ‘한미 경제 협력’ 분위기가 다시 차갑게 얼어붙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美서 공장 짓고 일자리 창출한 대가가 집단 구금”

한국 기업들은 최근 수년간 리쇼어링과 제조업 부흥 등 미국의 정책 기조에 맞춰 대미 투자를 크게 늘려 왔다. 지난해 기준 한국 기업의 미국 대상 외국인직접투자(FDI)는 221억 달러로 10년 전에 비해 3.7배, 40년 전에 비해 1096배로 늘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체는 2400곳이 넘고 2011년 이후 지난해까지 한국의 1위 투자 대상국은 줄곧 미국이었다. 또 미국 내 일자리 중 80만 개(2023년 기준)는 한국 기업 덕분에 직간접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투자는 앞으로 더 가파르게 늘어날 예정이다. 지난달 2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1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대규모 투자 발표 이후 약속했던 관세 인하는커녕 열흘 만에 한국인 집단 구금이라는 충격적인 상황이 발생하면서 한국 기업들 사이에선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자국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들에 계속해서 투자 리스크를 주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반도체 보조금을 받는 기업에 지분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뒤 실제 인텔의 지분을 확보했다. 나중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도 지분을 요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은 또 사업성이 불투명한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등에 대한 참여를 한국에 계속 요구하고 있다.

미국에 투자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LG에너지솔루션 등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모든 한국 기업에 트라우마가 될 것”이라며 “미국 경제에 기여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우가 있어야 하는데 마치 우리를 ‘범죄 집단’ 보듯이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렇다고 우리 기업들이 미국인을 고용해서 리스크를 낮추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한 미국 진출 기업 관계자는 “제조업이 붕괴된 미국에서는 공장 건설부터 운영까지 제 역할을 할 미국인 근로자를 충분히 구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미국이 일자리에 욕심내며 기술 이전 인력까지 추방하면 공장을 완공하지도, 가동하지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한미 경제 협력 상징인 조지아에서 날벼락

특히 이번 미국 정부의 급습이 한미 투자 협력의 상징성이 가장 큰 조지아주 공업지대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한국 기업과 미국 현지는 더욱 큰 충격에 빠진 분위기다. 조지아주는 전통적으로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해 세제 감면이나 공장 부지 제공 등 투자 친화적인 정책을 많이 펴왔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 투자 리스크를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트럼프 집권기에 인센티브만 믿고 대규모 투자에 뛰어들기에는 위험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미국에 투자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투자 리스크가 커졌지만 그렇다고 최대 수출 시장이자 글로벌 초강대국인 미국을 놓고 투자 결정을 번복하기도 쉽지 않아 이래저래 고민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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