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홍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가 직접 제작한 로봇 ‘코즈모’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데니스 홍 교수 제공
“1분 당 수백만 원을 받는 헐리우드 배우들이 로봇이 움직이기를 기다린다니요. 영화 제작비를 위해서라도 로봇을 실시간으로 제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했어요. 엄청난 과제였죠.”
4000억 원 대작 속 ‘코즈모’ 현실로
최근 넷플릭스가 공개한 영화 ‘일렉트릭 스테이트’에 등장하는 로봇 ‘코즈모’의 실물을 제작한 데니스 홍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는 23일 본보와의 줌 인터뷰에서 영화 촬영 현장을 회상하며 이 같이 말했다.
4000억 원이 투입된 일렉트릭 스테이트는 할리우드의 스타 감독인 루소 형제(앤서니 루소, 조 루소)가 연출한 작품으로 로봇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영화다. 영화 속 로봇들은 대부분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들어졌지만, 일부 장면에는 홍 교수팀이 제작한 진짜 로봇 코즈모가 등장한다.
홍 교수는 “재미있을 것 같아 뛰어든 프로젝트였는데 생각보다 큰 도전이었다”며 “거대한 머리를 가진 코즈모가 걷게 만드는 것부터가 난제였다”고 전했다.
로봇이 자연스럽게 걸으려면 안정적인 무게 중심이 중요하다. 하지만 코즈모 프로젝트에서는 디자인이 모두 완성된 상황에서 실물을 제작해야 했기 때문에 로봇 제작에 필요한 요소가 반영되지 못했다. 홍 교수는 “로봇공학자 입장에서는 0점짜리 설계”라며 “코즈모를 걷게 만들기 위해 여러 달 밤을 새며 갖은 방법을 모두 동원했다”고 회상했다. 결국 코즈모는 걷는 데 성공했고, 영화에 출연하고 홍보에 따라나설 수 있었다.
AI 만능주의 경계해야 로봇 발전
재미로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홍 교수는 “학문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고 했다. 로봇을 움직이게 만드는 방식에는 크게 수학적 모델링을 기반으로 한 ‘모델 베이스’ 방식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러닝 베이스’ 방식이 있다. 홍 교수가 이끄는 UCLA 로봇 공학 연구실 ‘로멜라’는 고전적인 모델 베이스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코즈모를 걷게 하기 위해 팀을 두개로 나눠 모델 베이스와 러닝 베이스로 각각 코즈모를 학습시키고 있다. 홍 교수는 “현재는 모델 베이스가 조금 더 앞서고 있지만 한 달 뒤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좀 더 관찰한 뒤 논문까지 작성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두 방식은 장단점이 매우 뚜렷하다. 생성형 AI가 등장하며 많은 로봇 연구실이 AI 기반의 러닝 베이스를 채택하고 있지만 AI는 입력부터 결과에 이르는 중간 과정을 알 수 없는 ‘블랙박스’ 문제가 남아있다.
홍 교수는 “물리학, 미적분학을 하나도 몰라도 데이터만 있으면 로봇도 바로 걷고 뛰는 것이 가능하다”며 “하지만 왜 그런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로봇의 행동에 100% 확신을 가지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어 “원자력발전소와 같이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위험 환경에 AI 기반의 로봇을 투입할 수 있겠냐”며 ‘AI 만능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모델 베이스 방식은 로봇의 움직임을 모두 수학 방정식으로 정의하고 풀어줘야 하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환경에 매우 취약하다. 가령 가정용 휴머노이드의 경우 집 안의 의자 위치가 바뀌거나 새로운 그릇이 들어오는 등 다양한 상황에 빠르게 적응해야 하는데, 모델 베이스 방식은 이 모든 상황을 미리 인지하고 알려줘야 한다는 의미다.
홍 교수는 “로보틱스 분야에서는 두 방식이 가진 장점을 융합하려는 시도가 많다”며 “두 방식을 비교 분석하는 코즈모 연구는 이런 시도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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