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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병은 보통 기억력 문제로 시작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공간 인식 능력이 더 먼저 무너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앨런 뇌과학연구소는 알츠하이머병이 발병 20년 전부터 뇌 속에서 조용한 변화를 시작한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해 10월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사망한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의 뇌를 정밀 분석해 치매 진단 전후에 어떤 세포 변화가 발생하는지 추적했다.
그 결과, 증상 발현보다 훨씬 이른 시점부터 시작되는 ‘초기 신경세포 손실 단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단계에서는 극히 일부 뇌세포가 조용히 손상되기 시작하는데, 이는 뇌 영상이나 기억력 검사로는 감지하기 어려운 미세한 변화이다.
이러한 손상은 정상적인 노화와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묘하지만, 이후 알츠하이머병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핵심 경로가 된다.
“내비게이션이 어려워졌다”…기억력보다 빠른 뇌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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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특히 ‘측두엽 중간이랑(MTG, middle temporal gyrus)’이라는 뇌 부위에 주목했다. 이 영역은 공간 탐색, 방향 감각, 거리 판단, 시각 정보 통합 등 현실 공간을 인식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해당 부위의 억제성 뉴런(특히 somatostatin 양성 뉴런)이 알츠하이머병의 초기 단계에서 가장 먼저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뇌 회로의 균형이 무너지고 방향 감각이 흐려지는 증상이 유발될 수 있다.
그 결과, “내비게이션이 어렵다”, “익숙한 길이 낯설다”, “사람과 너무 가까이 서 있는 것 같다”는 감각적 이상이 기억력 저하보다 앞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단백질 축적보다 빠른 세포 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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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병은 일반적으로 아밀로이드(amyloid)와 타우(tau) 단백질이 뇌에 축적되며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이러한 단백질 축적이 본격화되기 전에 이 특정 뉴런이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연구 책임자 마리아노 가비토 박사는 “뉴런 손실이 누적되면 기억, 언어, 사고 등 주요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뇌 부위까지 점차 파괴된다”며 “알츠하이머병의 조용한 시작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강조했다.
‘조용한 시작’…조기 진단이 결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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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알츠하이머병은 주로 기억력 테스트나 MRI 촬영을 통해 진단된다.
하지만 이 방법들은 이미 뇌 손상이 상당히 진행된 이후에야 이상 징후를 포착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이번 연구는 겉보기에 정상처럼 보이는 뇌조차도 내부적으로는 이미 손상이 진행 중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초기 신경세포 손실 단계’를 조기에 포착하고 개입한다면 병의 진행을 늦추거나 막을 가능성이 생긴다.
미국 알츠하이머협회에 따르면 알츠하이머병은 증상 없이 수십 년간 진행될 수 있으며, 조기 개입 여부에 따라 예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2022년 기준, 알츠하이머병은 전체 치매 환자의 약 60%를 차지했고, 약 7만 4000명이 이 병으로 사망했다.
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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