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우정… 좁고 깊은 관계 선호하는 중년
친구 수 감소는 자연스런 현상… 홀로 고립된 것 같다면 ‘위험’
모르던 사람과 ‘찐친’ 되기까지 꼭 수십 년 세월 필요한 것 아냐
교우 관계 적은 ‘아싸’일지라도 새 친구 사귈 때는 오히려 유리
한동안 뜸했던 지인에 ‘깜짝 연락’, 생각보다 훨씬 고맙고 반가워해
믿고 의지하는 ‘가장 가까운 친구’ 5명, 자주 만나며 깊은 대화를 나누는 ‘친한 친구’ 15명, 종종 안부를 묻는 ‘좋은 친구’ 50명, 알고 지내는 ‘그냥 친구’ 150명….
‘던바(Dunbar)의 수’에 따르면 한 사람이 안정적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범위는 최다 150명 정도다. 영국 문화인류학자 로빈 던바 옥스퍼드대 실험심리학과 명예교수는 1993년 영장류 대상 연구 결과를 토대로 평균 친구의 수를 발표했다. 대뇌 신피질 크기의 한계 때문에 한 사람이 관리할 수 있는 인맥의 최대 범위가 150명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이때 인맥은 우연히 술자리에 동석해도 당황스럽지 않은 정도의 사이를 나타낸다.
친목 정도에 따라 5, 15, 50, 150명으로 늘어나는 친구의 수가 내 삶에 얼마나 적용될 수 있을까. 휴대전화 목록을 살펴보며 최근 연락을 주고받은 사람들을 세어 보자. 그 수가 생각보다 초라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2023년 국내 시장조사 전문 업체인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가장 친한 친구 수를 조사한 결과 ‘3명 미만(33.1%)’이 가장 많았다. 또 ‘친구는 진실한 친구 딱 한 명이면 충분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51.8%에 달했다.
친구가 몇 명 있어야 ‘정상’이라는 절대적인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친구가 많다고 해도 피상적이고 얄팍한 관계가 대부분이라면 소수의 친구를 둔 사람보다 훨씬 외로울 수 있다. 그런데도 문득 ‘난 왜 친구가 별로 없지?’ ‘나만 외로운 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고독함이 느껴질 땐 어떻게 해야 할까.
● 나이 들수록 좁고 깊은 관계 선호
나이 들수록 대인 관계가 좁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로라 카스텐슨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사회정서적 선택이론으로 설명했다. 젊을 땐 인생에 많은 시간이 남았다고 여겨 목표 달성, 성취, 배움뿐 아니라 대인 관계를 넓히는 데 에너지를 쏟는다. 미래에 대한 일종의 투자인 셈이다.
반면 중년기부터는 미래보다 현재의 정서적 만족에 더 비중을 둔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현재 행복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 친인척, 친구 등 오래된 관계 위주로 깊게 교류하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좁고 깊은 관계를 선호하게 되면서 친구 수도 20, 30대 때와 비교해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물론 친구 없이 혼자 노는 ‘자발적 고독’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원하는 여가 생활로 보내는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하지만 마음을 나눌 친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경우엔 얘기가 좀 다르다. 외로움은 몸과 마음 건강에 해로울 뿐 아니라 수명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미국 공중보건서비스단(USPHS)은 외로움이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심신 건강에 해롭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인간 행복 조건을 가장 오랫동안 추적, 연구한 일명 ‘하버드대 행복 연구’도 이를 증명한다. 몸과 마음의 건강 및 장수와 깊은 연관이 있는 요소는 좋은 관계에 있었다는 것이 이 연구의 핵심이다. 1938년 당시 하버드대 재학생 268명, 보스턴 빈곤층 10대 456명의 생애를 80년 넘게 추적한 결과다. 나이 들수록 친구 수는 줄 수 있어도, 어쩔 수 없이 혼자 지내며 겪는 고독은 위험하다는 의미다.
● ‘절친’ 없어 서글프다? 아직 늦지 않았다
‘친한 친구가 몇 명 있느냐’는 질문에 퍽 곤란함을 느꼈다 해도 서글퍼하기엔 이르다. 깊은 우정 관계를 만들기 위해 수십 년 세월이 필요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미 캔자스대 커뮤니케이션학과 연구진은 친구를 사귀는 데 얼마나 시간이 필요한지 알아보기 위해 성인 355명을 조사했다. 모두 최근 6개월 새 원래 살던 곳에서 50마일(약 80km) 이상 떨어진 곳으로 이사한 사람들이었다. 이사 후 새로 알게 돼 친해진 사람과 언제, 어떻게 만났고, 무엇을 하며, 얼마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지 등을 물었다. 같이 일하거나 수업 들은 시간은 빼고 순수하게 개인적으로 의사소통한 순간만을 ‘함께 보낸 시간’으로 계산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들을 동료나 지인, 가벼운 친구, 보통 친구, 좋은 친구, 정말 친한 친구 등으로 구분해 보라고 했다.
그 결과, 서로 알게 된 경로나 함께한 활동보다는 함께 보낸 시간이 친구가 되는 데 절대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적 소통 시간이 10시간 미만인 사람은 지인이나 동료 정도로만 분류됐다. 어쩌다 어울리게 된 가벼운 친구는 30시간 이상, 정기적으로 소통하는 보통 친구는 50시간 이상을 같이 보낸 사이에서 나타났다. 정서적 유대가 형성된 사이인 좋은 친구는 140시간이 필요했고, 서로를 매우 중요한 존재로 여기는 정말 친한 친구가 되기까지는 300시간 이상이 걸렸다. 만약 새 친구와 매일 1시간씩 소통한다면 10개월 뒤엔 정말 친한 친구가 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 친구가 없으면 매력이 없어 보일까?
새 친구를 사귀기에는 친구가 많지 않은 것이 득이 될 수도 있다. 보통 친구 많은 ‘인싸(인사이더)’가 ‘아싸(아웃사이더)’보다 성격 좋고 외향적이어서 많은 사람이 친구로 선호할 것 같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마카오대 경영학과 연구진은 ‘어떤 사람과 친구 하고 싶은가’를 주제로 여러 실험을 한 뒤 ‘친구 수의 역설’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성인 100명에게 ‘보통 성인은 가볍게 알고 지내는 친구가 100명 정도’라는 가정을 들려줬다.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첫 번째 그룹에는 ‘다른 사람들은 친구가 200명 있는 사람과 50명 있는 사람 중 누구와 더 친구가 되고 싶어 할까’라고 물었다. 두 번째 그룹에는 ‘만약 나라면 친구가 200명 있는 사람과 50명 있는 사람 중 누구와 친구가 되고 싶은가’를 물었다.
다른 사람의 선택을 예상해 보라고 한 첫 번째 그룹에서는 ‘친구 200명 있는 사람을 택할 것’이라고 답한 비율이 72%에 달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선택을 물은 두 번째 그룹에서는 ‘친구 50명 있는 사람을 택할 것’이라는 비율이 78%나 됐다. 이 같은 결과는 연구진이 비슷하게 설계한 또 다른 6건의 실험에서 반복해 나타났다.
왜 친구가 더 적은 사람이 새로운 친구 후보로 매력 있어 보인 걸까. 연구진은 호혜성 원칙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친구 관계는 물질적, 정서적, 시간적 노력을 주고받는 관계인데 이미 친구가 너무 많은 사람에게는 애정과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이 들 수 있다는 것. 연락도 뜸하고 나에게 관심이 적은 친구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우려 때문에 친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을 자신의 친구로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냉정하게 볼 때 우정은 서로 물질적, 심리적, 시간적 노력을 다할 수 있을 때까지만 유효하다”며 “사람들은 이런 욕구가 잘 충족될 것 같은 사람을 친구로 삼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 “너무 뜸했나…” 연락할까 말까 고민될 땐?
바쁘게 살다 보면 한때 가까웠던 친구와 연락이 뜸해져 관계가 소원해지기 쉽다. 오랜만에 연락하려 해도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른다는 막연한 걱정 때문에 관둔다. ‘내가 소심한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누구나 조금씩 이런 면을 가지고 있다. 모든 일을 자신의 관점에 치우쳐 생각하는 자기중심 편향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내 연락을 고마워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다지 반기지 않을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더 사실처럼 받아들이기 쉽다.
실제로 이런 생각은 기우일 가능성이 크다. 미 피츠버그대 경영학과 연구진은 오랜만에 ‘깜짝 연락’한 사람과 받은 사람 사이의 인식 차이가 얼마나 큰지 실험해 봤다. 대학생 54명에게 한때 친했으나 한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e메일을 보내라고 했다. 상대방이 자신의 e메일을 받고 얼마나 반가워하고 고마워할지 예측해 보라고도 했다. 동시에 연구진은 e메일을 받은 사람에게 오랜만에 친구의 연락을 받고 얼마나 반갑고 고마웠는지 간단한 설문 조사를 했다.
양측 응답을 비교한 결과, e메일을 보낸 사람이 예측한 것보다 연락을 받은 쪽에서 훨씬 더 반갑고 고맙다는 뜻을 밝혔다. 이런 결과는 후속 실험에서 오랜만에 연락하며 과자나 차(茶) 같은 작은 선물을 함께 보냈을 때와도 비슷했다. 보낸 사람은 돈 들여 선물을 보내면서도 상대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느낀 고마움과 반가움은 이들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컸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성인 1576명을 대상으로 비슷한 실험을 해 본 결과 이 같은 깜짝 연락은 특별한 날이 아닐 때 효과가 더 좋았다. 새해, 명절, 생일처럼 예측할 수 있는 날이 아니라 문득 상대가 생각나는 날 연락했을 때 상대방이 더 반가워했다.
연구진은 이런 현상의 원인을 의외성에서 찾았다. 뜻밖의 연락에 상대방이 의아하거나 이상하게 여길 거라 걱정될 수 있지만, 연락받는 사람은 어느 날 문득 자기 생각을 해준 이에게 뜻밖의 큰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사람들은 ‘그냥’ 더 자주 연락하길 바란다”고 격려한다. 이런 작은 행동이 상대방에게는 예상보다 훨씬 더 의미있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문득 얼굴이 떠오르는 이가 있다면 ‘잘 지내? 오랜만에 생각나서 연락해’라며 안부를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 간단한 메시지의 힘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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