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탕카멘의 저주’ 부른 독성물질, 백혈병 특효약 열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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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년 6월 26일 11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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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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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이집트 투탕카멘왕의 무덤을 발견했다. 3000년간 잠들어 있던 황금의 관과 가면, 온갖 보석들이 줄줄이 나왔다. 발굴 비용을 지원했던 영국의 카나번 백작이 이 경이로운 매장지를 방문한지 몇 달 만에 사망했다. 발굴에 참여했던 여러 사람이 비슷한 증세를 보이다 죽었다. 미라가 저주를 내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1970년대 폴란드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5세기에 지어진 카지미르 4세의 지하묘지를 발굴했던 12명의 고고학자 중 10명이 같은 운명을 맞았다.

과학이 저주가 아님을 밝혀냈다. 카지미르의 무덤 분석 결과 아스페르길루스 플라부스(Aspergillus flavus)라는 곰팡이가 발견되었는데, 이 곰팡이의 독소는 치명적인 폐 감염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무덤 탐험가들에게 치명적인 폐 감염을 유발했다고 여겨졌던 독성 곰팡이가 새로운 암 치료법의 열쇠를 쥐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학술지 네이처 화학 생물학(Nature Chemical Biology)에 발표한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이 곰팡이가 백혈병 치료에 유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가장 극적인 아이러니이다. 한때 죽음을 가져온다고 두려워했던 동일한 곰팡이가 이제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라고 교신저자인 셰리 가오(Sherry Gao)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화학·생물분자공학 교수가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아스페르길루스 플라부스는 수 세기 동안, 심지어 밀폐된 무덤 안에서도 휴면 상태로 있을 수 있는 포자를 생성한다. 이 곰팡이는 특히 면역 체계가 약한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호흡기 감염을 유발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 곰팡이가 생성하는 독특한 화합물을 조사하여 RiPPs(리보솜 합성·번역 후 변형된 펩타이드)라고 불리는 자연 화합물의 한 종류를 발견했다. 생물학에서 ‘번역’은 유전정보를 해독해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말한다.

이러한 분자는 분리하기 어렵고 곰팡이에서 드물게 발견되지만, 복잡한 구조와 생물학적 활성을 가지고 있어 암 세포를 죽이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아스페르길루스 플라부스에서 그동안 보고된 적 없는 RiPPs 4종을 발견했다. 네 가지 모두 특이한 맞물린 고리 구조가 공통적으로 존재했으며 아스페리기마이신(asperigimycins)으로 명명했다.

넷 중 두 가지 아스페리기마이신에는 별도의 변형 없이도 강력한 항백혈병 특성이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지난 수십 년간 백혈병 치료에 사용한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 약물인 시타라빈, 다우노루비신과 동일한 수준의 효과라는 평가다.

연구진은 아스페리기마이신이 암세포의 세포 분열 과정을 방해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암세포는 정상세포와 달리 비정상적으로 분열한다는 특징이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무엇보다 기존 화학요법제가 건강한 세포를 손상시킬 위험이 있는 것과 달리 아스페리기마이신은 건강한 조직에 영향을 주지 않고 백혈병 세포의 분열을 선택적으로 방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초기 실험에 따르면 이 화합물은 유방암, 간암, 폐암 세포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세포 유형에만 치료 효과를 낸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이러한 선택성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아스페리지마이신을 동물 모델에서 시험할 계획이며, 궁극적으로 인간 대상 임상시험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구진은 다른 곰팡이 종에도 아스페리기마이신과 유사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화합물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고대 세계는 여전히 현대 의학을 위한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무덤은 저주로 인해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치료법의 원천이 될 수 있다”라고 가오 교수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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