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의료원 서보경 교육수련실장
미국 전공의 교육 인증위원회서 국내 최초의 ‘국제허브’로 지정
진료 능력-의사소통-윤리성 등 6가지 핵심 역량 기반으로 교육
자체 수련 평가 시스템 만들고 의료원 내부 인턴 교육에 적용
고려대의료원 서보경 교육수련실장은 “의사 교육은 국민 건강과 직결된다”며 “현재 우리는 훗날 어떤 의사가 내 곁에 있을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의료원 제공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전공의 지도 교수들은 훗날 내가 만날 의사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질 높은 수련 환경 개선에 사활을 걸었다.”
지난해 2월 의정 갈등 속에 수련 병원을 떠났던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복귀 조건으로 수련 환경 개선과 수련 연속성 보장 등이 포함된 새로운 대정부 요구안을 제시했다. 이달 말 하반기 전공의 모집을 앞두고 복귀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다.
수련 병원들도 전공의 복귀를 대비해 분주하다. 고려대의료원 서보경 교육수련실장(고려대 의과대학 영상의학교실)은 “국내 전공의 수련 환경에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리·지식 등 균형 잡힌 인재 키워야
연차, 치료 건수만으로 좋은 의사가 되는 시대는 끝났다. 환자와 공감하고 윤리적인 판단을 할 줄 아는 의사, 기술과 인성을 갖춘 전문가를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는 사회의 과제가 됐다.
고려대의료원은 올해 3월 미국 전공의·전임의 교육 인증위원회(ACGME)로부터 국내 최초의 ‘국제 허브’로 지정됐다. ACGME는 의사가 갖춰야 할 역량을 기준으로 수련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수련 병원을 평가·인증하는 기관이다.
미국은 1981년 ACGME를 설립해 전공의 수련 교육과정과 수련 병원을 인증하고 역량 기반 교육을 관리하고 있다. 미국의 수련병원이 연방 건강보험 프로그램인 메디케어로부터 전공의 급여에 관한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전공의와 펠로(전임의) 수련 프로그램이 ACGME의 인증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프로그램의 질이 낮거나 평가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인증 취소나 시정 명령이 내려지기도 한다.
현재 우리나라 수련 시스템은 보건복지부가 수련 기관을 지정하고 정원을 승인한다. 각 학회는 수련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병원이 실무를 맡는 구조다. 전공의가 수련 기간에 어떤 역량을 갖췄는지 체계적으로 측정할 시스템이 없다 보니 결국 모든 평가가 전문의 시험으로 집중된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 필요한 역량 평가보다 시험 점수에 의존하는 구조다.
의사 교육의 판도를 바꾸는 핵심은 역량 기반 교육(CBME)과 마일스톤 평가다. CBME는 연차, 수련 시간보다 눈에 보이는 역량을 갖췄는지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핵심 역량은 6가지로 △환자 진료 능력 △자기 주도 학습 △전문성과 윤리 △의사소통 능력 △보건 의료 시스템 이해 △자원 관리 능력이다.
마일스톤은 전공의가 수련 중 도달해야 할 성장 이정표다. 미국에서는 이를 1∼5단계로 구분해 4단계 이상 돼야 전문의 자격이 주어진다. 시간이 흐른다고 전문의가 되지 않고 실제 성장과 역량이 기준이 된다. 교수뿐 아니라 환자·보호자·간호사·동료 의사, 본인까지 참여하는 360도 평가를 한다. 서 실장은 “CBME는 시간 채우기 수련이 아니다. 일정 수준의 실력을 갖춘 의사로 성장하도록 돕는 교육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360도 평가는 전공의가 수련 기간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명확한 임무를 받을 수 있다.
선진화된 교육 시스템 작동… 지도 교수 역량 중요
선진화된 교육 시스템이 작동하려면 지도 교수의 변화가 필요하다. 전공의의 성장을 이끌고 평가의 질을 높이려면 교육자 자신도 새로운 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를 위해 고려대의료원은 지도전문의 역량 강화에 나섰다. 지난해 5월 서 실장과 이영미 교수(의과대학 의학교육학교실), 김수진 교수(안암병원 응급의학과), 김완준 교수(구로병원 간담췌외과), 김호연 교수(안산병원 산부인과)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ACGME 연례 연수에 다녀왔다. 소규모 토론, 역할극, 대화 중심 피드백을 통해 역량 기반 교육을 실제 임상에 어떻게 적용할지 집중적으로 훈련받았다. 올 3월에는 고려대 의과대학에서 ACGME 수석 부회장인 로라 에드거를 초청해 특강과 워크숍을 열었다.
고려대의료원은 한국 실정에 맞는 KUM-ACGME 자체 교육 플랫폼을 출범시켰다. 전공의를 잘 가르치는 독립적이고 제도화된 수련 평가 시스템을 목표로 한다.
최근 대한의학회를 중심으로 ‘전공의 수련교육원’ 같은 상설 기관 설립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서 실장은 “ACGME는 수련 제도를 국가가 함께 책임지는 공공 시스템으로 끌어올렸다”라며 “미국 병원들은 ACGME 인증 없이는 공적 의료보험 제도에서 지원되는 전공의 급여도 없다”고 말했다. 이는 병원이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수련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서 실장은 “KUM-ACGME는 전국 어디서 수련받든 일정 수준의 교육이 보장되는 기준점이 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환자는 어떤 의사를 만나든 안전과 진료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려대의료원은 올해 의료원 내부 인턴 교육에 이를 적용하고 내년엔 전국 병원과 경험을 공유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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