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에이전트로 구성된 가상 연구실
각 분야별 전문가 AI 생성해 논의
다양한 역할의 ‘인공지능(AI) 과학자’가 모인 가상 연구실에서 며칠 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 아이디어가 제안됐다. AI들은 짧으면 몇 초, 길어야 몇 분 안에 끝나는 자체 회의를 동시에 여러 개 진행하며 복잡한 연구 전략을 알아서 세우고 진행했다.
제임스 조 미국 스탠퍼드대 생의학데이터과학과 교수와 존 박 챈 저커버그 바이오허브 연구원 공동연구팀은 AI 에이전트들로 구성된 가상 연구실을 운영해 새로운 코로나19 치료제 아이디어를 빠르게 도출하는 데 성공하고 연구 결과를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공개했다. 감염병이나 생물학, 임상 등 전문가들이 몇 주에 걸친 노력을 해야 결과를 낼 수 있는 미션을 AI가 스스로 며칠 만에 해낸 것이다.
가상 연구실은 사람이 수석 연구자 역할을 맡은 AI에게 과제를 부여하면서 시작된다. 수석 AI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추가 AI 에이전트를 생성하고 스스로 연구실을 운영한다. 대규모 언어모델(LLM)로 구동되는 AI 에이전트는 과학적 추론, 의사결정 능력을 갖췄다.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프로젝트에서 수석 AI는 면역학, 계산생물학, 머신러닝 분야 전문가 AI 에이전트를 생성했다. 현실에서는 즉각 구성하기 어려운 다학제 연구실을 순식간에 자체적으로 구축한 셈이다. 예상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건설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는 ‘비판적 AI’는 프로젝트를 가리지 않고 포함됐다.
AI들은 회의를 열고 아이디어를 논의했다. 화장실에 다녀올 시간이나 간식 등이 필요한 사람들의 회의와 다르게 AI들은 짧으면 몇 초, 길어도 몇 분 안에 회의를 끝냈다. 한 AI가 여러 회의에 동시에 참석하는 것도 가능했다. 필요한 도구를 요청하기도 하고 데이터도 직접 분석한다. 연구팀은 이 과정에서 비현실적이거나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검증하기 어려운 아이디어는 논의에서 제외하도록 사전에 명령했다.
AI들은 기존 항체 치료제 대신 나노항체(nanobody)를 새로운 치료제로 제안하고 후보 설계안 92개를 생성했다. 항체는 바이러스가 숙주세포에 침투하기 위해 결합하는 부분에 먼저 달라붙어 감염을 막고 파괴를 유도하는 단백질이다. 나노항체는 라마 등 낙타과 동물에서 발견된 항체로 크기가 인간 항체의 4분의 1 수준으로 작다. AI는 나노항체의 크기가 작아 모델링과 설계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AI가 제안한 나노항체들을 실험실에서 합성한 결과 후보 중 2종류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강하게 결합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AI를 통해 범용 치료제 개발 가능성이 제안된 것이다.
연구팀은 “실험 데이터를 다시 가상 연구실로 전달해 나노항체 설계를 개선하고 있으며 가상 연구실을 다른 문제 해결에도 적극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병구 동아사이언스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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