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시골에서 홀로 살아온 80대 노인이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사례가 한국에서 나와 의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수혈을 받은 적도 없다고 한다.
국제학술지 ‘임상 사례 보고’(Clinical case reports) 8월호에는 국내 한 병원 의료진이 보고한 ‘80대 여성 HIV진단 사례’가 실렸다.
이 여성은 지난해 내시경 검사에서 림프종이 발견됐고, 항암 치료에 앞서 진행한 혈액검사에서 HIV가 양성으로 나왔다. HIV는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에이즈)의 원인 병원체다.
■ 수혈 無, 침 맞은 적도 없어
할머니의 감염경로는 미스터리다. HIV 감염은 대개 20∼40대에서 발견되는데, 80대 고령층에서, 그것도 시골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된 삶을 살아온 할머니에게서 나온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할머니의 남편은 20년 전 심장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생전 대학병원에 입원해 여러 차례 시술과 검사를 받았기에 진단되지 않은 HIV가 있었을 가능성은 낮았다.
할머니의 두 자녀는 모두 HIV 음성 판정을 받았다.
가족들은 할머니가 림프종 진단을 받기 전까지 수혈은 물론, 주사, 약물사용, 침술, 문신 시술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 오랜 문맹에 사회적 고립생활
할머니는 남편이 사망한 이후 시골에서 혼자 살아왔다. 따로 사는 자녀들과 접촉도 거의 없었고, 오랜 문맹에 사회적 고립 생활을 했다고 한다.
할머니의 HIV 전파 경로에 대한 자가 보고가 얼마나 정확한지 알수 없지만, 평가 당시 현저한 기억 장애와 혼란 인지 기능 저하는 없었다. 의료진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수준이었다고 한다.
연구진은 이번 사례를 통해 사회적 취약층의 HIV 진단 지연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노인 HIV 감염 가능성 배제 해선 안돼
연구진은 논문에서 “많은 의료 서비스 제공자와 환자들은 종종 HIV를 노령자가 가능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아 검사와 진단이 지연된다”며 “할머니는 장기간의 문맹과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증상을 인지하거나 의료 제공자와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능력이 제한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정기적인 HIV검사는 일반적으로 13~64세 사이의 연령대에 권장되고 있으며, 노인을 대상으로 한 지침은 없다.
연구진은 “암묵적인 편견과 고정관념이 검진 미실시를 더욱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의료 제공자 교육과 함께 취약성을 고려한 지침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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