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위협하는 폭염, 기온 낮추기→체온 식히기로 대책 전환을”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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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서 폭염 관련 연구 잇따라… 美 연구팀, 고온다습 환경 분석
상대 습도가 82% 넘는 날에는… 심장 관련 응급상황 26.7% 급증
산모가 극심한 폭염에 노출 땐… 신생아 사망 건수 증가하기도
폭염 대응방식 전환 목소리 커져… “사람 위주의 생리학적 접근 필요”

전 세계 과학자들은 폭염이 단순한 무더위가 아니라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폭염을 주요 연구 주제로 정하고 우리 삶을 어떻게 위협하는지, 어떤 대비책이 필요한지 치밀하게 분석한 뒤 연구 결과를 잇따라 내놓는 중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전 세계 과학자들은 폭염이 단순한 무더위가 아니라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폭염을 주요 연구 주제로 정하고 우리 삶을 어떻게 위협하는지, 어떤 대비책이 필요한지 치밀하게 분석한 뒤 연구 결과를 잇따라 내놓는 중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올여름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펄펄 끓고 있다. 8월까지만 견디면 되는 단순한 무더위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폭염이 일상화되면서 더위가 생명과 직결되는 위협이 되고 있다. 스페인에서 20일 가까이 폭염이 지속되면서 이로 인한 추정 사망자가 1100명을 넘어선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 세계 과학자들은 폭염을 주요 연구주제로 정하고 우리 삶을 어떻게 위협하는지, 어떤 대비책이 필요한지 분석한 연구 결과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최근 폭염이 단순한 무더위가 아니라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또 기온을 낮추는 데 집중했던 기존 폭염 대응 방식을 앞으로 사람의 몸을 직접 식히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신생아, 노년층에 치명적인 폭염

폭염은 아이와 노인에게 치명적이다. 홍콩대, 홍콩 링난대 연구팀은 산모가 폭염에 오래 노출될수록 신생아 사망률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 넥서스(PNAS Nexus)’에 19일(현지 시간) 발표했다.

연구팀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 33개국에서 약 88만3000건의 출생 기록을 통해 각 산모의 임신 9개월 동안 누적된 폭염 강도, 폭염 일수, 당시 습구 온도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산모가 임신 기간 동안 겪은 폭염 누적 온도가 150도를 넘으면 출생아 1000명당 신생아 사망 건수가 평균 2명 늘었다. 폭염 누적 온도란 평년 온도보다 높았을 때의 온도 차를 모두 합한 값이다. 폭염에 얼마나 많이 시달렸는지를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산모가 임신 중 극심한 폭염을 평년보다 50일 이상 더 겪으면 출생아 1000명당 신생아 사망 건수가 평균 1∼4명 늘어났다. 연구팀은 “단순한 열스트레스뿐 아니라 폭염으로 병원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고 병원균이 확산돼 신생아에 위험한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년층의 경우 땀샘 기능이 약해지고 체내 수분 함량이 줄어들어 신체의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진다. 심혈관 질환, 당뇨, 신장 질환 등 노인 만성질환이 체온 조절을 방해해 폭염을 견디기 더욱 어렵다. 스미사 라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교수 연구팀이 20일(현지 시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이 같은 사실에 대한 노인들의 인식이 매우 부족하다. 연구팀이 2010∼2024년 발표된 노년층과 폭염을 주제로 한 41편의 논문을 검토한 결과 일상화되는 폭염에 장기적으로 노년층이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라오 교수는 “폭염으로 인한 노년층 사망이 주로 밤늦게 집에서 일어나는 이유는 이들이 폭염이 얼마나 위험한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사회·정책적으로 폭염이 발생하기 전 노년층이 대비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폭염이 높은 습도를 만나면 더욱 위험해진다. 18일(현지 시간)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 분석 결과 올해 6월 이후 지구 표면의 절반에 가까운 지역의 밤 기온이 이례적으로 높았고, 이 중 3분의 2가 기록적인 습도를 경험했다. 습도가 높으면 공기 속 수증기가 열을 지표면에 잡아둬 기온이 떨어지지 않게 된다.

캐서린 콘론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UC데이비스) 부교수는 “밤에 기온이 높으면 낮 동안 더위에 시달렸던 신체 회복을 방해해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며 “더위는 신체가 더 많은 혈액을 순환하도록 요구하고 혈압을 상승시켜 심장마비와 뇌졸중 위험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밤사이 지속된 고온이 신체에 이런 스트레스를 주는 셈이다.

미국 툴레인대 연구팀은 고온다습한 환경이 조성될수록 심장 관련 문제로 응급실을 방문할 가능성이 6배 더 높다는 연구 결과를 13일 국제학술지 ‘총 환경과학(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에 공개했다. 연구팀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고온다습한 도시인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심장 관련 질환으로 응급실을 방문한 34만 건 이상의 사례를 분석했다. 결과에 따르면 습도가 낮은 경우 기온이 높아지면 심장 관련 응급 상황 위험 가능성이 4.4% 증가했고, 상대 습도가 82%를 넘는 날에는 위험 가능성이 26.7%까지 급증했다. 연구팀은 “높은 기온과 습도가 결합하면 땀이 증발하기 어려워져 신체가 체온을 조절하는 기능이 떨어지고 심장은 더 큰 부담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 “폭염 대응 방식 대전환 필요”

전문가들은 속속 공개되는 이 같은 과학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폭염 대응 방식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올리 제이 호주 시드니대 열과건강연구센터 교수 등 4명의 기후 전문가는 6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논평을 내고 “현재 대부분의 폭염 경보는 대기 온도를 기준으로 발령되고 정부가 제시하는 대비책도 활동 줄이기, 수분 섭취 등 단순하다”며 “열스트레스는 복사열, 습도, 풍속, 개인 특성에 따라 정도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종합적인 요소를 고려한 세부적인 폭염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기후 변화 시대의 열 적응 전략은 ‘기온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을 직접 보호하는 방법’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사람의 몸을 직접 식히는 생리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폭염#신생아 사망률#노년층 건강#습도#기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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