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교차가 커지고 몸이 쉽게 지치는 계절, 가을은 중년 여성에게 더욱 민감하게 다가온다. 난데없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거나 밤에 땀을 흘리며 뒤척이는 경험은 단순한 컨디션 저하가 아니라 갱년기의 신호일 수 있다.
갱년기는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분비가 급격히 줄면서 나타나는 신체·정신적 변화다. 평균 50세 전후로 찾아오며 안면홍조·발한·불면·우울감·피로·관절통 등 다양한 증상이 동반된다. 실제로 국내 45∼55세 여성의 절반 이상이 갱년기 증상으로 삶의 질이 떨어진다고 보고됐다.
갱년기 신체적 증상은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불안과 우울증 등 정서적, 심리적 영향은 종종 제대로 인식되지 않은 채 더 커질 수 있다. 갱년기 여성은 불면증을 앓을 가능성이 크다. 2024년 한국리서치 조사 결과 갱년기 증상 경험자 47.8%가 불면증을 겪었다. 이 중 64.9%는 삶의 질이 크게 저하될 정도로 심한 불편을 호소했다.
불면증이 생기는 이유는 단순히 마음가짐이나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다. 갱년기에 접어들면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체온조절, 심박수, 수면 리듬을 관장하는 자율신경계가 불안정해진다. 밤이면 몸을 각성하는 교감신경 활성이 줄어야 하는데 오히려 과도하게 활성화하면서 심장이 두근거려 잠들기 어려워진다.
갱년기 우울증도 급격한 호르몬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로토닌, 도파민 등 주요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감정 조절 능력 저하로 이어진다.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좌절감과 불안감이 심화하며 심할 경우 자살 충동까지 느낄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나이 탓’으로 치부되기 쉽다는 점이다. 증상을 방치하면 골다공증, 심혈관질환, 우울증 등 만성질환 위험이 커지고 회복도 어려워진다. 갱년기는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관리에 따라 노후 건강의 질이 달라진다.
치료의 핵심은 호르몬 보충 요법(HRT)과 생활 습관 개선이다. HRT는 부족한 호르몬을 보충해 증상을 완화하고 골다공증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다만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전문의 상담이 필수다. 또한 균형 잡힌 식단, 규칙적인 운동, 금주·금연, 스트레스 관리가 갱년기 극복에 큰 도움을 준다. 최근에는 콩 아이소플라본, 오메가3 지방산 등 건강기능식품이나 명상·요가 등 심신 안정 프로그램을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갱년기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며 “조기 진단과 적극적인 관리를 통해 증상을 완화하고 건강한 노년을 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평소 정기검진을 통해 심혈관질환, 골다공증 등을 미리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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