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는 마음을 살리는 힘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11일 14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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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특임이사)
정찬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특임이사)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바쁘고 가장 큰 스트레스 속에 살아간다. 통계는 냉혹하다. 자살률은 OECD 국가 가운데 여전히 최고 수준이다. 많은 이들이 “마음이 아프다”라고 호소하지만, 정신건강 문제는 아직도 병리의 영역에 갇혀 부끄럽거나 감추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병리만이 아니라 회복과 치유의 힘을 지니고 있다. 이 힘을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력하게 일깨우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달리기다.

달리기의 가장 큰 미덕은 ‘행동이 의욕을 만든다’는 진리를 몸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우울이나 불안으로 지칠 때 우리는 흔히 의욕이 생겨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다. 신발 끈을 묶고 한 발 내딛는 순간, 뇌 속 신경전달물질은 즉각 변화를 시작한다.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아드레날린이 활성화돼 기분과 의욕이 좋아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심장이 빨라지고 땀이 흐르면서 막혀 있던 생각과 감정의 통로가 열린다. 우울은 조금씩 옅어지고 불안은 정돈된다. 달리기는 생각을 바꾸기 어려울 때, 몸을 먼저 움직여 마음을 살리는 길이다.

최근 한국 사회에 불고 있는 러닝 열풍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선다. 경제가 발전한 나라에서 러닝의 대중화는 흔한 현상이지만, 한국은 다르다. 한번 시작하면 금세 열정적으로 몰입하고 기록에 도전하며 함께 달리며 흥을 나눈다. 새벽을 열고 밤길을 달리는 도심 러너, 주말마다 공원을 가득 메운 마라톤 참가자들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뜨거운 에너지 속에는 서로를 격려하며 회복하는 치유의 힘이 담겨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정신치료 및 약물치료와 더불어 운동, 영양, 수면 같은 생활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중에서도 달리기는 가장 접근하기 쉽고 효과가 빠르다. 혼자 달려도 좋지만, 함께 달리면 훨씬 큰 힘을 얻는다. 뛰는 동안에는 직업도, 지위도, 성별도, 세대도 사라진다. 달리는 길 위에서 모두가 하나가 된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동료 의사들과 함께 ‘마인드런(Mind Run)’을 만들었다. “함께 달려요, 함께 치유해요(Running together, Healing together)”라는 구호처럼, 달리기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지지하고 회복하는 모임이다. 치료에 있어서 연구는 근거를 제공하고, 체험은 확신을 심어준다. 의사들이 몸소 효과를 체험하면 환자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다.

올가을 열리는 수많은 러닝 대회는 수천 명 이상이 함께 달리는 국민 행복 축제다. 단순한 마라톤 대회가 아니라,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멋진 경험이 될 것이다.

우리는 흔히 한국 사회의 정신건강을 이야기할 때 위기와 병리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회복의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달리기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 우리 모두에게 “다시 살아갈 힘이 있다”는 확신을 선물한다. 마음이 지칠 때, 몸을 먼저 움직여 보라. 한 발 두 발 내딛는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의 용기를 확인하고 치유의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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