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타인과 관계 맺고 어울리는 능력… 초등 입학 전후에 기본기 익혀야
자녀 갈등에 부모 개입하면 안돼… 좌충우돌해 봐야 자립할 수 있어
특정 질환은 전문기관 도움 필요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회성은 계속 자라나는 영역”이라며 “사회성 발달의 기초가 형성되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 기본기를 갖추도록 도와야 한다”고 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아이를 낳아 기르며 수만 갈래 고민을 마주한다. 타인과 관계 맺고 어울리는 능력을 말하는 사회성은 그중 단골 주제다. 옹알이를 안 해서, 눈 맞춤을 못해서, 말이 없어서, 친구에게 휘둘려서…. 돌잡이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문제를 겪게 된다.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대한민국 중학교 2학년 가운데 관계 문제로 속앓이하지 않는 학생은 없을 것”이라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기본 사회성을 탑재하도록 도와주고, 초등 고학년부터는 홀로 세상에 맞설 단단한 마음을 심어 줘야 한다”고 했다.
● 초등 1∼2학년에 익혀야 할 5가지 능력
사회성은 타고나는 것일까, 길러지는 것일까. 정상 범주 아이의 사회성은 키와 비슷하다. 부모 키가 크면 자녀도 클 확률이 높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밥을 잘 먹지 않으면 키가 자라지 않는다. 사회성 역시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동시에 받는다. 다만 자폐스펙트럼장애처럼 병리적인 경우엔 유전 영향이 더 크다.
사회성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 기술이다. 사회 인지와 공감, 의사소통, 감정 조절, 갈등 해결, 협력의 5가지로 구성된다. 이 5가지 영역을 꾸준히 연마하면 국어 영어 수학처럼 실력이 좋아진다. 미국 등에는 초등 저학년부터 이 같은 내용을 가르치는 과목이 따로 있다.
김 교수는 “집단생활을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다양한 관계를 맺고 갈등을 겪게 된다”며 “어떠한 환경에서도 자녀가 잘 지낼 수 있도록 유치원∼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상황별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에게서 사회성 5개 영역 기술을 갈고 닦는 방법을 알아봤다.
-사회 인지와 공감
초등 저학년은 감정을 세밀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감정 읽기에도 서툴다. 사회 인지와 공감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이걸 잘한다. 친구가 슬퍼 보이면 “괜찮아?”라고 묻곤 휴지를 가져다줄 줄 안다. 반대로 또래보다 이 능력이 부족하면 ‘눈치 없다’는 말을 듣는다. 어떤 감정 공부를 해야 할까.
‘감정 공감 퀴즈’는 감정 공부의 기초 편에 해당한다. ‘장난감을 빼앗는 장면’ ‘친구가 그림을 칭찬하는 장면’ 같은 다양한 상황이 그려진 카드를 준비한다. 카드를 보고 느낀 기분을 아이와 이야기한다. ‘기쁘다’ ‘슬프다’ 같은 감정을 떠올린 이유를 알아본다. 카드 없이 말로 상황을 설명해도 된다. ‘표정 알아맞히기 게임’은 친구 마음을 읽는 데 도움이 된다. 인물의 표정이 드러난 사진이나 동영상을 준비한 뒤 그 인물의 감정을 유추하는 게임이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일상 대화”라며 “매일 5분이라도 좋다. 잠들기 전, 저녁식사 후 등 시간을 정해 아이와 기쁘고 화나고 속상했던 순간을 공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의사소통
소통의 기본은 듣기다. 모래시계로 경청의 기본기를 다져 보자. 모래시계를 놓고 아이와 마주 앉는다. 시계 속 모래가 다 떨어질 때까지 한 사람은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은 듣는다. 듣는 사람은 고개 끄덕이기, 눈 마주치기, 표정 짓기처럼 비언어적 반응을 해 본다. 30초∼1분 부터 시작해 점차 시간을 늘린다.
목소리 크기도 중요하다. 상황에 알맞은 목소리를 내면 소통이 잘되고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귓속말, 조용한 소리, 교실 대화, 일상 대화, 큰소리 또는 외침 등이 표시된 ‘5단계 목소리 온도계’를 만든다. 놀이터나 엘리베이터 등에서 손가락으로 단계를 가리키며 음성을 조절해 본다.
의사소통 방법도 익혀야 한다. 아이에게는 대화의 물꼬를 트기 쉽도록 열린 질문을 사용한다. “지금 화났어?” 대신 “지금 기분이 어때?”라고 묻는 식이다. 요구 사항은 명확하게 표현하도록 돕는다. “하지 마” 대신 “나는 그렇게 하면 불편해. 멈춰 줬으면 좋겠어”나 “도와 줘”가 아닌 “내 책가방 무거운데 같이 들어줄 수 있어”처럼 구체적으로 말하도록 한다.
-감정 조절
화가 난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면 친구들이 불편해한다. 감정 조절 3단계를 익히면 감정과 스트레스 관리 능력을 키울 수 있다. 1단계는 감정 알아차리기다. 지금 떠오르는 감정과 신체 반응을 파악하도록 돕는다. 얼굴이 붉어지는지, 심장이 두근거리는지 체크한다. 2단계, 감정 다스리기다. 심호흡이나 복식호흡으로 진정하는 연습을 반복한다. 나비 자세, 그림 그리기, 긍정 문장 쓰기 같은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본다. 3단계는 감정 표현하기다. “나는 OOO 때문에 △△△를 느꼈다”처럼 간단한 문장로 기분을 전달하도록 지도한다.
‘감정 온도계’도 유용하다. 1에서 10까지 척도로 감정을 그려 그 강도를 파악하도록 돕는 도구다. 아이가 화가 났을 때 감정이 얼마쯤 되는지 묻고 심호흡, 나비 자세, 혼자 있기 등 감정 조절법을 고르도록 한다. 선택한 방법을 써서 3∼5분간 진정하도록 돕는다. 감정이 충분히 가라앉은 뒤 감정 변화에 대해 대화한다.
-갈등 해결과 협력
아이들은 갈등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이때 부모가 지나치게 개입하거나 방관해서는 안 된다. 김 교수는 “서툴지만 스스로 해결하는 경험을 쌓아야 아이가 자립할 수 있다. 부모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버리면 아이들은 갈등을 학습할 기회를 잃게 된다”고 했다.
연습이 필요하다. 갈등과 화해 서사가 담긴 ‘겨울왕국’이나 ‘미운 아기 오리’ 같은 동화를 읽고 대화해 본다. 역할극도 도움이 된다. 이때 부모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갈등은 성장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여유를 가져야 한다.
사과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사과는 자신의 행동이 남에게 미친 영향을 깨닫고 책임지는 첫걸음이다. 변명 섞인 사과, 조건부 사과, 잘잘못을 따지는 사과는 바람직하지 않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사과하고, 그런 행동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하도록 한다. 다만 사과를 건성으로 했더라도 격려해야 한다. 어릴 때 억지로 사과한 경험은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다.
갈등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이 크다면 전문가 도움을 받아야 한다. 또래에 비해 갈등 상황에서 아이 행동이 지나치게 미성숙한 경우에도 전문가 상담을 받으면 좋다. 상대방 표정과 말투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갈등의 원인이 되는 행동을 반복하거나, 사소한 자극에도 반응이 지나친 경우 등이다.
협력은 함께하는 힘이다. 단순히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우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알려 준다. 보드게임, 스포츠, 집안일 등을 통해 규칙을 지키는 습관, 차례를 기다리는 인내심 등을 배울 수 있다.
● 학교 들어가기 전에 정서-인지 발달 점검해야
특별한 어려움이 있는 아동에게 사회성은 더 어려운 숙제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있는 아동은 경청이 어려워 대화에 잘 섞이지 못한다. 감정을 날것 그대로 표출해 친구와도 자주 다툰다. 자폐스펙트럼장애 아동은 상대방 의도 파악에 서툴러 또래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 경계선 지능 아동은 맥락을 이해하는 힘이 부족해서, 불안감이 큰 아동은 먼저 다가가지 못해서 관계 맺을 때 자주 상처받는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ADHD와 자폐스펙트럼장애는 각각의 특성에 맞춰 전문 기관 도움을 받으면 좋다. 김 교수는 “전문 기관에서는 충동성, 부주의, 동떨어진 관심사, 언어 지연 같은 아이들 성향에 맞춰 각기 다른 전략으로 접근한다. 발달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은 전문 사회성 발달 프로그램 등의 도움이 필요한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불안이 높은 아이들은 말로 감정을 표현하도록 지도한다. 손으로 만지작거리면 긴장이 풀리는 말랑말랑 스트레스볼(ball, 공)도 유용하다. 증상이 심하면 약물 치료가 도움이 된다. 경계선 지능 아이들은 속도에 맞춰 학습 전략을 짜야 한다.
정서 및 인지 질환은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김 교수는 ADHD, 경계선 지능, 불안장애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점검해 보라고 권한다. 본격적인 단체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약물치료나 사회성 치료 등으로 적응을 도우면서 각 질환의 특성으로 인한 트러블을 예방할 수 있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영유아기에 경고 시그널이 있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생후 6개월이 지났는데도 주위 자극에 반응하는 사회적 미소가 없고, 9개월이 됐는데도 엄마아빠와 눈을 잘 맞추지 않거나 이름을 불렀을 때 쳐다보는 등의 호명반응이 없다면 전문기관을 방문해야 한다.
자녀의 어려움은 어디까지 공개해야 할까. 김 교수는 “담임 교사에게 아이의 특성을 공유하고 협조를 구하는 게 원칙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신중할 필요도 있다”며 “증상을 조기 발견해 아이가 빨리 성장하고 발달하도록 돕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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