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독-스위스 공동연구팀 발표
2000∼2023년 폭염 213건 분석… 2000년대 폭염 기온 1.4도 ↑
2020∼2023년엔 2.2도나 올라
180개 기업 온실가스 배출량… 폭염 강도 증가에 ‘절반’ 기여
인간-기업의 폭염 영향 밝혀내
과학자들이 인류의 어떤 활동이 얼마나 폭염에 기여했는지 책임소재를 구체적으로 가려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전 세계를 괴롭히는 폭염이 인간이 유발한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어떤 활동이나 요소가 폭염에 책임이 있는지는 아직 명확히 가려지지 않았다. 과학자들이 인류의 어떤 구체적인 활동이 얼마나 폭염에 ‘기여’했는지 책임소재를 구체적으로 가려냈다. 기후변화의 책임을 체계적으로 수치화해 향후 대책 수립이나 기후 소송 등에서 중요한 과학적 증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ETH), 독일 라이프치히대, 미국 컬럼비아대 공동연구팀은 2000∼2023년 전 세계에서 보고된 213건의 주요 폭염 사례를 분석하고 연구 결과를 11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인간으로 인해 발생한 폭염 사례는 전체의 4분의 1에 달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해 온 화석연료·시멘트 생산 기업 180개가 폭염 강도를 늘리는 데 50% 이상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국제 재난 데이터베이스(EM-DAT)에 2000∼2023년 사이 213건의 폭염 사례를 분석했다. EM-DAT는 벨기에 루뱅 가톨릭대의 재난역학연구센터가 1988년부터 관리·운영하고 있는 글로벌 재난 통계 데이터베이스다. 정부, 국제기구, 연구자들이 재난 경향 분석, 위험 평가 등에 사용한다.
연구팀은 산업화 이후 인간이 일으킨 인위적인 기후변화가 반영된 ‘현재 기후’와 산업화 이전(1850∼1900년) 상태가 유지됐을 때를 가정한 ‘가상 기후’를 설정했다. 인위적인 기후변화는 화석연료 연소, 산업 활동, 시멘트 생산, 산림 파괴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같은 온실가스 배출이 일으킨 기후변화를 가리킨다. 온난화가 대표적이다. 연구팀은 관측 데이터와 관련 기후모델 자료를 결합해 폭염 사례의 특성을 연구하고 현재 기후와 가상 기후 상황에서 같은 폭염 사례가 얼마나 자주, 얼마나 강하게 나타나는지를 비교했다.
분석 결과 폭염 사례 213건 모두 인위적인 기후변화 때문에 더 강하게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55건(약 26%)은 인간의 활동이 없었으면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 폭염 사례로 분석됐다. 인위적인 기후변화는 폭염 사례의 평균 기온을 2000∼2009년 1.4도, 2010∼2019년 1.7도, 2020∼2023년 2.2도 높였다. 폭염 강도에 대한 기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또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전 세계 기업 180개의 온실가스 배출이 폭염 사례의 강도를 얼마나 높였는지도 분석했다. 특정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이 없었다면 폭염 사례의 강도가 얼마나 달라졌냐를 수치화한 것이다.
분석 결과 이들 기업의 온실가스가 폭염 사례의 강도를 증가시키는 데 약 50% 기여했다.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상위 14개 기업만 따져봐도 약 28%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폭염 등 극한 기후의 빈도와 강도는 사람에 의해 발생한 온난화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문제는 이런 ‘기후변화는 인류 탓’이라는 생각이 추상적 책임론에 그쳤다는 점이다. 인간이 불러온 인위적인 기후변화가 극한 기후에 미치는 영향이 제대로 계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인간이 폭염이 발생하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지, 어떤 기업이 폭염 발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정량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라는 데 의미가 있다.
연구팀은 “연구 결과가 보여주는 인위적인 기후변화의 영향이 폭염 외 다른 극한 기후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정책 입안자가 기후 정책을 만드는 데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