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아닌 현실’… 휴머노이드 로봇 상업화의 문을 연 어질리티 로보틱스”[최중혁의 월가를 흔드는 기업들-CEO편]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17일 14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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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노이드 로봇 선두주자 ‘애질리티 로보틱스’ 페기 존슨 CEO 인터뷰

휴머노이드 로봇은 오랫동안 ‘미래의 기술’로만 여겨졌다. 공상과학영화 속 단골 소재였고, 연구실에서의 시연이나 전시 무대에서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상황은 급변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실험실을 벗어나 실제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의 비약적 발전,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 로봇 하드웨어 기술의 성숙이 맞물리면서 휴머노이드 로봇은 이제 ‘머지않은 미래’가 아니라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빠른 성장을 예측한다. 모건스탠리는 2050년까지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5조 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하는데, 이는 2024년 기준 글로벌 자동차 산업 총 매출의 두 배 수준이다. 골드만삭스는 2035년까지 시장 규모를 380억 달러로 전망하며 연간 출하량은 140만 대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씨티은행은 2050년까지 시장 규모가 7조 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평가하며, 제약·의료·물류 등 다양한 산업에서의 도입 확대를 강조했다. 수조달러로 이어지는 이 숫자들은, 휴머노이드가 단순한 ‘실험적 기술’을 넘어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할 것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장밋빛 전망의 배경에는 심각한 노동력 부족 문제가 있다. 미국에서만 물류·제조업 분야의 미충원 일자리가 110만 개에 달하며, 전 세계적으로는 제조업 노동자가 700만 명 부족한 상황이다.

‘디짓(Digit)’은 여러 워크플로우를 지원한다. 디짓과 같은 로봇은 입고, 주문 처리, 재고관리와 같은 프로세스에서 효율성과 정확성을 높이고 전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출처 어질리티 로보틱스
‘디짓(Digit)’은 여러 워크플로우를 지원한다. 디짓과 같은 로봇은 입고, 주문 처리, 재고관리와 같은 프로세스에서 효율성과 정확성을 높이고 전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출처 어질리티 로보틱스

이 거대한 변화의 최전선에 선 기업 중 하나가 바로 미국 오리건주에 본사를 둔 어질리티 로보틱스(Agility Robotics)다.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유일하게 실제 수익을 창출 중인 이 회사는 2015년 오리건 주립대 로보틱스 연구실에서 분사해 설립됐으며, 세계 최초로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로봇을 실제 상업 현장에 투입한 기업으로 꼽힌다. 회사의 대표작 ‘디짓(Digit)’ 은 이미 글로벌 물류 아웃소싱 기업 GXO의 창고에서 30만건 이상의 물품을 옮기며, 휴머노이드가 실전에서 ‘일하는 로봇’이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어질리티 로보틱스의 차별점은 명확하다. 경쟁사들이 유튜브에 화려한 시연 영상을 올리는 동안, 디짓은 실제 물류창고에서 박스를 나르며 돈을 벌고 있다. 글로벌 물류기업 GXO는 2023년 6월부터 디짓을 정식 도입해 운영 중이며, 아마존도 2023년 10월 디짓의 물류센터 시범 운영을 발표했다. 또한 이 회사는 대량 생산을 위한 인프라까지 갖추고 있다. 오리건주 세일럼에 위치한 전용 공장 ‘로보팹(RoboFab)’은 연간 1만 대 이상의 디짓을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목표로 설계됐다.

어질리티 로보틱스의 최고경영자인 페기 존슨(Peggy Johnson).
어질리티 로보틱스의 최고경영자인 페기 존슨(Peggy Johnson).
이 회사의 성장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 바로 페기 존슨(Peggy Johnson) CEO(최고경영자)다. 2024년 어질리티 로보틱스에 합류한 그는 퀄컴에서 24년간 엔지니어와 경영진으로 일했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6년간 전략적 파트너십과 벤처투자를 총괄하며 기업 벤처펀드 M12를 설립해 80여개 기업에 투자했다. 이어 매직리프(Magic Leap)의 CEO로서 소비자 중심 전략을 기업용 AR로 전환시키고, ‘매직리프 2’라는 차세대 헤드셋을 시장에 선보인 바 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그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엔지니어’로 선정했고, 여성 기술인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다. 기술과 비즈니스를 잇는 리더십으로 주목받아 온 그가, 이제는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의 상업화라는 도전에 나선 것이다.

필자는 8월 존슨 CEO와 화상 및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일부 기술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어질리티 로보틱스의 CTO 프라스 벨라가푸디가 대신 서면으로 답변했다. 존슨 CEO는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이 마침내 상업화의 변곡점에 도달했으며, 2026년에는 인간과 로봇이 같은 공간에서 안전하게 협업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보틱스의 시대가 마침내 왔다”…퀄컴·MS 거쳐 애질리티로

―퀄컴과 마이크로소프트, 매직리프 등 세계적인 기술 기업을 거쳐 2024년 어질리티 로보틱스 CEO로 합류했다. 당신의 커리어에서 어떤 결정적 순간과 선택들이 어질리티 로보틱스 CEO로 이어졌는지, 그리고 이 기회에서 가장 기대됐던 부분은 무엇이었는가?

“결정적이었던 순간은 바로 ‘로보틱스’였다. 퀄컴에서 근무하던 시절, 당시 CEO였던 폴 제이콥스가 UC버클리에서 로보틱스로 학위를 했던 경험을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반도체 회사를 경영하면서도 로보틱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늘 강조했다. 우리는 늘 ‘퀄컴이 로보틱스 산업에 진출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당시에는 시기나 환경이 맞지 않아 결국 실행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 모두에게 로보틱스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심어줬다. 그 불씨가 내 마음속에도 오래 남아 있었고, 수십 년이 흘러 어질리티 로보틱스 CEO로서의 기회가 왔을 때 망설임 없이 도전했다. 드디어 로보틱스가 산업 전면에 설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어질리티에 끌린 이유는 ‘이미 로봇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설계 단계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미 10년 넘게 개발을 이어오며 4세대에 이르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보유하고 있었다. 단순히 아이디어 차원이 아니라, 동적 안정성 같은 가장 큰 물리적 문제를 이미 해결해 놓은 로봇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었다. 즉, ‘우리가 무엇을 만들겠다’가 아니라 ‘이미 만들었고 작동한다’는 사실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이 두 가지 이유가 내가 회사를 이끌게 된 배경이다.“

―어질리티 로보틱스는 현재 생산을 본격적으로 확장하며 늘어나는 수요를 맞추는 중요한 단계에 있다. CEO로 합류했을 때 가장 먼저 집중한 우선순위는 무엇이었는가? 이전에 비즈니스 개발, 전략적 파트너십, 제품 출시를 경험한 경력이 이번 성장 단계에서 회사를 이끄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회사를 처음 이끌었을 당시, 로봇 자체는 이미 훌륭하게 완성돼 있었다. 하지만 조직은 여전히 제품 중심의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었고, 이제는 연구기관(오리건주립대 로보틱스 연구소)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상업화’라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해야 했다. 좋은 제품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시장에서 판매하고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나는 퀄컴, 마이크로소프트, 매직리프에서 이런 상업화 과정을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있었다. 특히 퀄컴 시절 처음 코드분할 다중접속(CDMA) 휴대폰을 만들 때는, 아무도 해본 적 없는 기술을 완전히 새로 시장에 안착시켜야 했다. 휴대폰을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만들어야 했고,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길을 개척해야 했던 것이다. 어질리티 역시 로봇 분야에서 비슷한 지점에 서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내가 겪어온 경험을 회사에 접목시킬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내가 가장 먼저 집중한 것은 바로 ‘상업화 체계 전환’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가시성과 인지도 확보’였다. 어질리티는 로보틱스 업계 안에서는 잘 알려진 회사였지만, 그 바깥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서북부, 그것도 시애틀이 아닌 포틀랜드 남쪽의 작은 도시에 본사가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회사가 커지려면 반드시 더 큰 무대에 올라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경험 있는 인재들을 새로 채용했고, 불과 몇 개월 만에 휴머노이드 로봇 ‘디짓(Digit)’을 월스트리트저널 라이브, 블룸버그 같은 무대에 직접 세울 수 있었다. 디짓이 스스로 걸어서 무대에 올라오는 장면은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다른 어떤 로봇도 쉽게 보여주지 못한 장면이었다. 그 순간 우리는 ‘독자적인 카테고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1년간 이 전략을 꾸준히 이어온 덕분에, 우리는 고객뿐 아니라 투자자와 우수 인재들로부터도 많은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마침내 어질리티는 ‘레이더 위에 확실히 포착된 회사’가 된 것이다. 결국 내가 합류한 이후 지금까지 집중해 온 핵심 과제는 두 가지, 상업화 전환과 가시성 확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오리건주 세일럼에 위치한 로보팹(RoboFab)은 세계 최초의 대규모 휴머노이드 로봇 전용 공장이다. 이곳은 어질리티 로보틱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Digit과 그에 필요한 부속품을 생산하는 핵심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출처 어질리티 로보틱스
오리건주 세일럼에 위치한 로보팹(RoboFab)은 세계 최초의 대규모 휴머노이드 로봇 전용 공장이다. 이곳은 어질리티 로보틱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Digit과 그에 필요한 부속품을 생산하는 핵심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출처 어질리티 로보틱스

―어질리티 로보틱스가 겨냥하는 물리적으로 힘든 작업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가?

“우리가 디짓으로 해결하려는 핵심 문제는 극심한 노동력 부족이다. 물류창고와 제조 현장은 단순하고 육체적으로 힘든 역할들을 채울 수 없어 막대한 인력 공백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공급망을 움직이려면 여전히 이런 작업들에 의존해야 한다. 결국 이 격차를 메워줄 솔루션이 필요한데, 바로 디짓이 그 해법이 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제조업 노동자가 700만 명 이상 부족할 것으로 전문가들이 추정한다. 이런 수요 공백은 단순히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전체의 안정성에 직결되는 심각한 과제다. 디짓은 바로 이 틈새를 메우기 위해 존재한다.”

AI 시대가 가져온 휴머노이드 로봇붐

―최근 전 세계적으로 갑작스럽게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가?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본다. 첫째는 인력 부족이라는 강력한 추세(tailwind)다. 오늘날 기업들이 채우지 못하는 일자리가 너무 많다. 그런데 그 일자리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업무다.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부상 위험이 큰 일이다. 예를 들어 단순히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물건을 옮기는 일을 하루 종일 반복하는 식이다.

5년 전만 해도 미국 내 물류와 제조업 분야에서 자재 취급(materialhandling) 직종의 미충원 일자리가 약 60만 개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수치가 두 배가 되어 11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채워지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 모두가 ‘익일 배송(next-day delivery)’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물류창고는 빠른 회전 속도를 요구받고, 그 결과 동일한 직원이 2교대를 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면서 부상률이 올라가고, 인력난은 더욱 심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결국 이런 인력 격차가 휴머노이드 수요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둘째는 인공지능(AI)이다. AI는 모든 산업에 불을 붙였고, 로보틱스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2022년 11월 ‘챗GPT 모멘트’ 이후 로보틱스 연구와 개발 속도가 눈에 띄게 가속화됐다. 예를 들어 로봇이 새로운 기술을 학습하는 속도가 크게 향상됐다.

우리는 이미 실제로 작동하는 로봇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위에 AI를 덧입히는 방식으로 빠르게 상용화할 수 있었다. 반면 업계 경쟁자들 중 일부는 ‘풀스택 AI(full-stack AI, 모델·데이터·인프라까지 모든 계층을 자체적으로 구축·운영하려는 방식)’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휴머노이드 로봇이라는 플랫폼 자체가 등장한 지 오래되지 않아 학습용 데이터가 충분히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방식은 쉽지 않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가진 비교우위다.

우리는 지난 4년 동안 디짓의 물리적 동작을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으로 훈련해 왔다. 덕분에 새로운 기술을 더 빠르게 익히고, 물리적 움직임을 더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었다. 요약하자면, 노동력 부족이라는 강력한 추세와 AI 발전이라는 촉매제가 결합해 오늘날의 휴머노이드 붐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본다.”

현재 미국 내 물류, 창고, 제조 산업에서는 100만 개가 넘는 자재 취급 관련 일자리가 비어있다. Agility Robotics의 휴머노이드 로봇 Digit은 기업들이 이러한 고도의 반복 작업을 자동화할 수 있도록 한다. 출처 어질리티 로보틱스
현재 미국 내 물류, 창고, 제조 산업에서는 100만 개가 넘는 자재 취급 관련 일자리가 비어있다. Agility Robotics의 휴머노이드 로봇 Digit은 기업들이 이러한 고도의 반복 작업을 자동화할 수 있도록 한다. 출처 어질리티 로보틱스

―최근 휴머노이드 로봇을 범용(general-purpose)기계로 포지셔닝하는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다. 휴머노이드의 역할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진화해 왔는가?

“휴머노이드의 가장 큰 차별점은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창고나 제조 시설에 가보면 사실 이미 ‘마법 같은 자동화(magical automation)’가 이뤄지고 있다. 로봇 팔은 고도의 정밀 작업을 반복해 특정 제품을 집어 옮기고, 자율주행 카트는 지능적으로 시설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나른다. 이들은 모두 놀라운 기계들이지만, 공통점은 결국 하나의 작업만을 잘 수행하도록 설계된 단일 목적 로봇이라는 것이다.

반면 휴머노이드는 다르다. 오전에는 하나의 일을 하고, 점심에는 또 다른 일을 하며, 오후에는 또 다른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 밤까지도 일할 수 있다. 즉, 사람처럼 한 가지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인간 노동자가 오전과 오후에 서로 다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듯, 휴머노이드 역시 범용적이고 다목적적인 존재다.

이런 특성 덕분에 휴머노이드는 단순히 한 가지 목적에 국한되지 않는다. 초기에는 물류와 제조 현장에서 두드러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산업 전반으로 확장될 수 있다. 사실 컨베이어 벨트조차 ‘제품을 이동시키는 로봇’이라고 볼 수 있지만, 휴머노이드는 훨씬 더 넓은 범위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이 사람들이 휴머노이드에 끌리는 이유다.”

연구소에서 기업으로… “노동력 부족이 만든 변화”

―과거에는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이 미 항공우주국(NASA)이나 독일 항공우주국(DLR) 같은 연구기관이나 우주 관련 기관이 주도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어질리티 로보틱스, 테슬라, 여러 스타트업들이 그 주도권을 가져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 즉 제도권 중심에서 기업 중심으로의 전환은 무엇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는가?

“결국은 사람 부족 문제로 귀결된다고 본다. 예를 들어 테슬라의 옵티머스(Optimus) 프로그램만 보더라도 제조업 일자리를 채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미국 내 제조업체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들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고령화된 노동력이다. 직원들이 나이를 먹고 은퇴하지만, 이를 새 인력으로 채우지 못한다. 여기에 더해 사람들이 제조업 일자리를 매력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도 있다. 결국 고령화된 인력과 기피되는 일자리라는 두 가지 트렌드가 맞물려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흐름은 미국 정부가 제조업 리쇼어링(reshoring, 해외로 나간 제조업을 다시 자국으로 불러들이는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과거 방식 그대로는 불가능하다. 단순히 사람을 더 고용하는 방식으로는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길은 처음부터 고도 자동화된 시설을 짓는 것이다. 미국으로 제조업을 다시 가져오려면 필연적으로 자동화 설비가 포함되어야 한다.

이 점이 휴머노이드 로봇 수요를 밀어올리는 강력한 추세로 작용하고 있다. 새롭게 짓는 제조 시설이라면 휴머노이드 로봇을 반드시 그 안에 포함시킬 것이라고 본다.”

―연구용 프로토타입을 넘어, 휴머노이드 로봇이 본격적으로 산업 현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만든 하드웨어나 기술 혁신은 무엇인가?

“몇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우선 ‘액추에이터(actuator)’다. 쉽게 말해 로봇의 각 부위를 움직이는 작은 엔진 같은 장치인데, 성능이 꾸준히 향상되고 가격도 내려가면서 큰 도움이 되었다.

둘째는 배터리 기술의 발전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휴대폰과 같은 소비자 전자기기 덕분에 배터리 최적화가 크게 진전되었고, 로보틱스 산업도 그 성과를 고스란히 활용할 수 있었다. 휴머노이드는 에너지를 전부 스스로 지니고 다녀야 한다. 전원 케이블을 꼽고 끌고 다닐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루 종일 작동할 수 있는 배터리가 필수다.

물론 중간에 충전이 필요하다면 로봇이 스스로 이를 감지하고 충전 장소를 찾아가 재충전한 뒤 다시 돌아와야 한다. 이런 물리적 차원의 발전 덕분에 지난 10여년간 로봇, 특히 휴머노이드의 모습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액추에이터와 배터리 기술의 혁신이야말로 휴머노이드를 연구용 프로토타입에서 산업 현장에 투입 가능한 형태로 끌어올린 핵심 요인이라 할 수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공동 설계

―어질리티 로보틱스는 토크 제어 역학과 DC 모터 구동을 포함해 지금은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표준이 된 여러 기술의 채택을 선도했다. 초기 보스턴 다이내믹스 아틀라스 모델에서 사용된 유압 액추에이터가 강력한 성능을 제공했음에도 이러한 선택을 한 동기는 무엇인가?

프라스 벨라가푸디(어질리티 로보틱스 CTO·이하 벨라가푸디) “유압 구동은 분명히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다. 하지만 휴머노이드 로봇의 규모에서는 너무 복잡하고, 유지보수가 많이 필요하며, 제어도 어렵다. 반면 토크 제어가 가능한 DC 모터 구동은 훨씬 더 다루기 쉽다. 신뢰할 수 있는 패키지 안에서 액추에이터의 물리적 움직임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고, 제작이나 유지보수도 간단하다.

또 하나의 큰 이점은 전기차(EV) 산업과의 정렬이다. 전기차 산업은 이미 토크 밀도와 컴팩트함을 개선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우리는 그 기술 발전의 혜택을 그대로 받아올 수 있다. 이런 점들이 우리가 DC 모터와 토크 제어 방식을 선택한 주요 동기다.”

어질리티 로보틱스의 로봇 진화, 캐시(Cassie)에서 디짓 4세대(Digit v4)까지. 출처 어질리티 로보틱스

―많은 로보틱스 회사들이 하드웨어 우선이나 소프트웨어 우선 접근으로 시작하지만, 장기적인 경쟁력은 결국 두 가지를 함께 설계하는 데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어질리티 로보틱스의 제품 로드맵은 점진적인 하드웨어 개선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한 도약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맞추고 있으며, 주요 역량 업그레이드의 주기는 어떻게 되는가?

벨라가푸디 “어질리티는 가능한 한 최상의 휴머노이드 로봇 솔루션을 설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 핵심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co-design) 개발하는 것이다.

우리의 로봇 하드웨어는 처음부터 인간이 생활하고 일하는 공간에서 안전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물리학을 기반으로 설계되었다. 디짓의 각 하드웨어 버전은 새로운 핵심 기능(unlock new core capabilities)을 열어주는데, 다음 버전인 V5에는 안전한 인간 감지 센서가 통합될 예정이다. 이런 하드웨어 진보는 다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맞물린다.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거나 성능이 개선될 때, 무선(OTA,over-the-air)으로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배포해 로봇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더 나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

즉, 어질리티의 로드맵은 점진적인 하드웨어 혁신과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맞물려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구조다.”

“R&D가 아니라 사업”… 물류부터 시작하는 전략

―산업 고객들은 일반적으로 반복적이고 좁은 범위의 업무를 잘 수행하는 로봇을 요구한다. 그러나 어질리티 로보틱스의 장기적 비전은 범용 로봇에 가까워 보인다. 단기적으로 고객에게 투자수익률(ROI)을 제공하면서도 장기적으로 더 넓은 과업 역량을 갖춘 로봇을 실현하기 위해 제품 진화를 어떻게 순차적으로 구상하고 있나?

“좋은 질문이다. 우리도 그 부분을 많이 고민했다. 로봇을 여러 작업이 가능하도록 설계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날 실제 수요와 자금이 집중된 곳은 물류 시설이다. 물류 시설은 제품을 옮겨야 하는데 인력이 부족하다. 바로 그곳에 집중하기로 한 이유다. 우리는 연구기관(R&D shop)이 아니다. 우리는 사업체다. 수요가 있는 곳, 돈이 있는 곳에 집중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중요한 점은 디짓이 현재 수행하는 모든 작업이 다음 단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하나의 유즈케이스(use case)가 다음 유즈케이스로, 또 그 다음으로 이어진다. 마치 빌딩 블록처럼 하나하나 쌓여서 결국 범용 로봇 비전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범용 로봇을 만들려면 데이터가 필수다. 실제 상업 현장에서 로봇을 투입하면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고, 이 데이터는 다시 파운데이션 모델(foundation model)을 훈련시키는 데 쓰인다. 이렇게 학습된 모델은 디짓이 새로운 기술을 더 빠르게 습득할 수 있도록 돕는다.
결국 이것은 선순환(virtuous cycle)이다. 현장에 로봇을 많이 배치할수록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고, 그 데이터로 디짓을 훈련시키면 새로운 기술 습득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수익을 창출한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매출을 올리며 사업을 키우는 것이 우리의 본질적 목표다. 우리는 연구기관이 아니라 비즈니스다. 현실적이어야 하고, 사업성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어질리티 로보틱스의 로봇이 전통적으로 인간 노동이 담당하던 작업을 맡게 되면서, 인간과 로봇이 같은 공간에서 공존하는 상황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디짓(Digit)은 이미 세계 최대 3자 계약물류기업 GXO에 배치됐지만, 현재는 안전을 위해 울타리 안에서만 작동한다. 공유 작업 공간에서 안전하고 제한 없는 인간-로봇 협업을 어떻게 구상하고 있나?

“이 문제는 결국 안전으로 귀결된다. 이 기술을 확장하는 데 있어 진짜 장벽은 AI나 배터리 기술이 아니다. 물론 이런 기술 발전도 도움이 되겠지만, 핵심은 사람과 나란히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는 것이다.

어질리티 로보틱스는 2026년에 인간과 함께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시장을 열어줄 열쇠가 될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이러한 수준의 안전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표준을 만드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완전한 협업 안전, 즉 디짓이 생산 현장에서 사람들과 울타리 없이 나란히 작업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새로운 안전 표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것이 인간-로봇 협업을 실현하는 마지막 관문이다.”

―어질리티 로보틱스가 상업화를 지향하는 만큼, 특히 하드웨어 비용 관리 측면에서 확장성이 핵심일 것이다. 미국에 기반을 둔 기업으로서, 비용 제약을 고려하면서 휴머노이드 로봇 제조를 대규모로 확장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인가?

“우리는 미국 오리건주 세일럼에 제조 시설을 두고 있다. 이 시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로봇 제조는 막대한 자본 지출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부품을 모아 조립하고, 테스트한 뒤 출하하는 과정이다. 반도체 공장처럼 클린룸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고도로 특수한 설비가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또 하나의 강점은 제조 시설이 엔지니어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점이다. 문제가 생기면 엔지니어들이 곧바로 현장으로 나가 제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굳이 전 세계를 비행기로 오가며 문제를 처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빠른 피드백과 짧은 턴어라운드는 우리가 가진 큰 장점이다.

회사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지난 10여 년 동안 1세대부터 4세대까지 로봇을 개발하며 꾸준히 비용 절감을 고민할 기회를 가져왔다. 현재는 5세대 프로토타입까지 가동 중이다. 이 과정을 거치며 배터리 활용 최적화, 사지(四肢)의 효율적 운용, 로봇이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이동하는 방식 등 다양한 영역에서 최적화를 달성해 왔다.

비용을 공개하지는 않지만, 일론 머스크가 언급한 2만5000~3만 달러 수준의 휴머노이드 가격대는 충분히 우리의 시야 안에 있다. 대량 생산과 추가적인 엔지니어링 최적화를 통해 그 가격대는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하다고 본다.

장기적으로 휴머노이드가 대량으로 보급되려면 결국 이 정도의 가격대까지 내려가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확산이 가능하고, 물류를 넘어 더 많은 산업 분야로 확장될 수 있다. 우리는 지금은 특정 세그먼트에 집중하고 있지만, 비용 절감이 실현되면 활용 범위는 크게 넓어질 것이다.”

아마존, GXO 등 파트너십과 경쟁 전략

―어질리티 로보틱스는 처음에는 포드와 손잡고 라스트마일 배송을 시도했지만, 이후 아마존과의 협업을 비롯해 물류와 창고 응용으로 전략적 초점을 옮겼다. 로보틱스 업계 전반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보이는데, 이런 방향 전환의 배경은 무엇인가?

“이는 단순히 잠재적 활용 사례를 초기 단계에서 탐색해 본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더 많은 관심이나 자원을 투입할 만큼의 필요는 없었다.”

―아마존과 GXO와의 파트너십에서 초기 배포 과정에서 가장 놀라웠던 운영상의 도전 과제나 기회는 무엇이었으며, 이것이 디짓(Digit)의 설계나 워크플로 통합에 어떤 중요한 영향을 미쳤나?

“아마존과의 협력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없다. 다만 GXO와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우리는 2024년 6월 5일에 GXO와 상업 배포 1주년을 맞았다. 불과 1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어질리티는 GXO를 위해 약 30만 개의 물품을 실제 현장에서 옮겼다. 이는 단순한 시험 운영이 아니라 상업적 배포가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는 중요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어질리티 로보틱스의 제품은 단순한 로봇이 아니라, 하드웨어(로봇, 부속품, 산업 장비), 소프트웨어(AI, 로봇 소프트웨어, 자동화 플랫폼, 통합 솔루션), 서비스(설계, 설치, 운영, 전환, 지원)를 아우르는 종합적 체계이다. 이는 산업별 과제를 효과적이고 안정적으로 해결하도록 맞춤화되어 있다. 출처 어질리티 로보틱스
어질리티 로보틱스의 제품은 단순한 로봇이 아니라, 하드웨어(로봇, 부속품, 산업 장비), 소프트웨어(AI, 로봇 소프트웨어, 자동화 플랫폼, 통합 솔루션), 서비스(설계, 설치, 운영, 전환, 지원)를 아우르는 종합적 체계이다. 이는 산업별 과제를 효과적이고 안정적으로 해결하도록 맞춤화되어 있다. 출처 어질리티 로보틱스

―앱트로닉(Apptronik)은 아폴로(Apollo)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고, 피겨(Figure)와 1X 같은 기업들도 비슷한 시장을 추구하고 있다. 상업용 휴머노이드를 가장 먼저 배치한 기업 중 하나로서, 어질리티 로보틱스가 직면했던 고유한 도전 과제 가운데 신규 진입자들이 과소평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는 휴머노이드를 실제로 배치한 최초의 기업이고, 1년 이상 유료 고객을 보유하며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 과정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도전 과제는 다시 한 번 안전 문제다. 이는 단순히 제품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규제 문제이기도 하다. 이 점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또 1X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가정용 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로드맵에 당분간 포함돼 있지 않다. 우리는 당분간 산업 현장에 집중할 것이다.”

―앱트로닉(Apptronik),피겨(Figure), 테슬라 옵티머스(Optimus) 같은 경쟁사들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어질리티 로보틱스는 단순한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이점을 넘어 어떤 방식으로 방어력을 유지하고 있나? 독점적 액추에이터 기술, 공급망 통제, 소프트웨어 스택, 혹은 고객 락인(lock-in) 측면에서 설명해 달라.

“사실 이 모든 요소가 조금씩 결합된 결과라고 본다. 우리는 1세대부터 5세대까지 발전해 오면서 이미 상당한 비용 경쟁력을 확보했다.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 덕분이다.

또한 독자적인 액추에이터 기술도 시간이 지나며 진화해 왔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다 보면 막다른 길에 부딪혀 다시 돌아가야 할 때가 있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그런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특정 액추에이터 유형의 한계, 특정 물리적 구조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최적화를 이뤄냈다. 단순히 오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또 다른 강점은 최근 1년간 영입한 업계 전문가들이다. 휴머노이드 경험자는 많지 않지만, 이들이 가진 상업적 전문성(commercial expertise)은 크다. 물류창고에 들어가기 위해 어떤 안전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지, 어떤 규제 요건을 만족해야 하는지, 기존 창고 관리 시스템(WMS)에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단순히 묘기를 보여주는 로봇을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 현장에서 ‘일’을 하려면 이미 존재하는 시스템과 원활히 호환돼야 한다. 실제로 수익을 내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장벽이다. 고객은 공정을 바꾸거나 공장 레이아웃을 다시 짜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단순히 사람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그대로 들어가 일을 대신할 수 있는 로봇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런 환경적 이해와 통합 경험 덕분에 확실한 우위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미래 비전

―창고·물류를 넘어 휴머노이드의 단기 상업 수요가 가장 강한 산업은 어디라고 보나? 또 어질리티 로보틱스는 특정 산업에 일찍 진입할지, 역량이 더 성숙할 때까지 기다릴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나?

“물류·창고를 넘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은 자동차 산업이다. 조립 라인에는 반복적이고 물리적인 작업이 많다. 예를 들어 부품을 한 구역에서 다른 구역으로 옮기거나, 라인사이드(line side)’에 부품 상자를 가져다 놓아 조립자가 차에 장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대표적이다. 이 유형의 업무는 휴머노이드가 잘할 수 있고, 실제로 거의 모든 자동차 회사로부터 휴머노이드에 대한 강한 관심을 확인하고 있다.

그다음은 리테일, 특히 대형 마트·식료품점이다. 밤에 트럭이 들어오면 화물을 내리고, 팔레트에서 물건을 내려 진열대 쪽 통로로 보내야 한다. 한밤중에 이뤄지는 매우 힘든 일이라 지원자를 구하기 어렵다. 이 역시 휴머노이드가 메울 수 있는 영역이다.

조금 더 장기적으로는 의료도 가능하다. 뇌수술 같은 고난도 의료 행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 병원 곳곳에서 무거운 장비를 옮기거나 기계를 밀고, 반복적인 물리 작업을 수행하는 일들이 있고, 휴머노이드가 충분히 맡을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가정도 있다. 다만 가정은 공장이나 병원처럼 ‘질서가 잡힌(disciplined)’ 환경이 아니다. 반려동물, 장난감, 아기 등 변수가 많은 ‘혼란스러운(chaotic)’ 환경이다. 따라서 안전 기준을 충족하는 일이 핵심 과제이며, 그 기준을 통과해야만 가정용 휴머노이드가 가능해진다. 지금은 공장처럼 통제된 환경이 가장 적합한 출발점이지만, 먼 미래에는 가정에도 휴머노이드가 함께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 본다.”

―휴머노이드가 많은 작업에 ‘과잉(overkill)’이라는 논란이 있었다. 정밀 조작이 필요하면 바퀴 달린 기반 위 양팔 로봇으로도 충분하고, 강한 기동성이 필요하면 4족 로봇이 더 적합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최근 기술 발전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지만, 이 회의론은 사라질까, 아니면 제품 로드맵을 형성하는 건전한 압력으로 남을까?

“각 형태의 로봇마다 맞는 사용처가 있다. 바퀴 달린 ‘휴머노이드형’ 로봇이 더 적합한 경우가 있고, 오직 휴머노이드만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예를 들어 휴머노이드는 계단을 오르내리고, 바닥의 턱이나 요철을 인지해 발을 들어 넘어갈 수 있다. 이런 다리 기반 보행 능력 덕분에 커브, 요철, 계단 등 공장 내 다양한 환경에서 유리하다.

반대로 공장 바닥이 매우 평탄하고, 넓은 공간에서 A에서 B로 단순 이송만 하면 되는 업무가 대부분이라면 바퀴형 로봇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어떤 때는 트럭이, 어떤 때는 SUV가, 또 어떤 때는 소형차가 맞듯이 ‘작업에 맞는 제품’을 고르면 된다.

다만 바퀴형 로봇이 휴머노이드의 역할을 대체하려면 사람을 기준으로 설계된 공간을 그대로 다녀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공장의 통로 폭과 선반 높이, 바닥 구조는 인간의 신체 치수에 맞춰져 있다. 바퀴형 로봇이 높은 곳의 무거운 물체를 들려면 전복 위험을 낮추기 위해 바닥면(베이스)을 넓혀야 하는데, 좁은 통로에서는 그 자체가 한계가 된다. 이런 사람 중심 환경에서는 이족 보행 휴머노이드가 더 적합하다. 결국 두 형태는 공존하게 되고, 오늘날 공장에 다양한 자동화가 혼재하듯 작업별로 서로 다른 로봇이 쓰이게 될 것이다.”

―최근 휴머노이드 로봇이 점점 더 정밀한 작업을 수행하는 장면이 공개되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산업 현장에서는 다리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데, 오히려 불필요하게 복잡성을 도입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실제 산업 환경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나?

“요즘 로봇 영상을 볼 때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로보틱스 산업 전문가 아론 프래더(Aaron Prather)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 자주 안전이 쇼맨십에 뒷전으로 밀린다. 우리는 부주의나 보여주기식 스펙터클에 시간을 쓸 수 없다.’

나도 그 말에 깊이 공감한다. 결국 산업 현장에서 중요한 건 멋진 시연이 아니라 실제로 안전하게 ‘일’을 할 수 있느냐이다. 휴머노이드가 진정한 가치를 증명하려면, 쇼 같은 퍼포먼스가 아니라 현장에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2035년에 휴머노이드 로봇이 오늘날의 지게차만큼 산업 시설에서 흔해진다고 상상한다면, 기술·비용·시장 준비 측면에서 어떤 결정적 변곡점이 필요하다고 보나?

“첫째는 비용이다. 공장에 들어가려면 결국 인간 노동자의 시간당 완전 비용(fully burdened cost)보다 낮아야 한다. 이 기준을 못 맞추면 결국 사람을 더 비싼 값에라도 고용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큰 요인은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안전이다. 지금 모든 휴머노이드는 워크셀(work cell)이라 불리는 안전 울타리 안에서만 일할 수 있다. 로봇은 울타리 안, 사람은 밖이다. 울타리로 구획할 수 있는 구역에서는 작업이 가능하지만, 시장 규모를 진짜로 키우려면 울타리 밖, 즉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협동 안전(cooperatively safe)’이라고 부른다.

이건 매우 어려운 과제다. 휴머노이드는 사람만큼 크고 무거우며, 팔·다리에 강한 토크가 걸린다. 사람이 다가올 때 절대 위해를 가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제어해야 하고, 자세 안정을 유지하면서 예상치 못한 인간의 행동에도 대응해야 한다. 누군가 로봇을 넘어뜨리려 해도 주변 사람에게 피해가 없어야 한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했고, 내년에 ‘협동 안전’ 휴머노이드를 시연할 예정이다. 워크셀을 벗어난 순간, 활용 가능한 시장이 크게 확대된다. 그다음 단계는 ‘협력 안전(collaboratively safe)’이다. 이는 사람이 로봇에게 물건을 건네면 로봇이 받고, 로봇이 사람에게 건네줄 수도 있는 직접 상호작용 단계다. 기준이 더 높아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다음 목표로 삼고 있다. ‘협동 안전’을 달성하면, 예컨대 “저기 하역장에 있는 빨간 상자를 가져와라” 같은 명령을 로봇이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 그 시점부터 가능한 업무 범위가 크게 넓어진다.”

창립 배경과 기술적 기반
어질리티 로보틱스는 2015년 미국 오리건주립대 Dynamic Robotics Lab에서 분사 형태로 설립된 휴머노이드 로봇 전문 기업. 공동 창립자는 조너선 허스트, 다미온 셸턴, 미하일 존스로, 이들은 양족 보행 로봇 연구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축적해 왔음.

· Cassie: 초창기 모델로, 하체 중심의 양족 보행 연구 플랫폼. 안정적 보행 알고리즘과 동역학적 제어 기술을 검증하는 데 활용됨.
· Digit: Cassie의 후속 모델로 상체와 팔, 인식 시스템을 탑재해 물류·창고 등 실제 산업 환경에서 활용 가능한 첫 상업용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발전.

회사는 이러한 기술적 진화를 바탕으로, 단순한 연구용 로봇을 넘어 물류 자동화와 산업현장의 인력 보조를 목표로 한 상용화 단계로 빠르게 전환.

주요 사업 및 성과
· RoboFab 공장: 2023년 오리건주 세일럼(Salem)에 세계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 전용 생산시설을 구축,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며 본격적인 상업화를 선언.
· 산업 파트너십: 아마존(Amazon), GXO Logistics 등 글로벌 물류 기업들과 파일럿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창고 자동화 및 주문 이행(fulfillment) 프로세스 개선을 위한 협업을 확대
비즈니스 모델: 단순 판매를 넘어 Robot-as-a-Service(RaaS) 모델을 추진, 유지보수·업데이트·서비스패키지를 통한 장기적 수익 창출을 모색.

최중혁 팔로알토캐피탈 대표
최중혁 팔로알토캐피탈 대표


필자(최중혁)는 미국 미시간대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은 뒤 삼성SDI America, SK Global Development Advisors 등을 거쳐 미 실리콘밸리 소재의 사모펀드 팔로알토캐피탈(Palo Alto Capital)을 설립해 운용하고 있다. ‘트렌드를 알면 지금 사야 할 미국 주식이 보인다’ ‘2025-2027 앞으로 3년 미국 주식 트렌드’ 등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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