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는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수진(손예진)이 주인공이다.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20대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것으로 설정했다. 매우 드물지만 이런 일은 현실에서도 벌어진다.
29세의 호주 여성 에린 켈리는 지난 6월 가슴 아픈 진단을 받았다.
퀸즐랜드 주 이글비에 사는 켈리는 10대 시절부터 언젠가 알츠하이머병이 찾아 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는 50세에 알츠하이머병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외할아버지는 45세, 이모도 할아버지와 같은 나이에 병으로 돌아가셨거든요”라고 켈리가 최근 호주 매체 7NEWS.com과 인터뷰에서 말했다.
8세 딸 에비를 홀로 키우는 싱글 맘 켈리는 “이렇게 빨리 제게 병이 찾아올 줄은 몰랐어요”라고 덧붙였다.
기억력 상실과 인지 기능 저하를 유발하는 신경 퇴행성 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은 치매의 가장 흔한 원인이다. 대개 65세 이후에 발병한다. 약 10%가 이보다 이른 50대부터 증상이 나타나며 조기발병 알츠하이머병이라고 부른다. 켈리처럼 20대에 시작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미국 메이요 클리닉에 따르면 30~64세 성인 10만 명 중 약 110명이 조기발병 알츠하이머병에 걸린다. 0.11% 확률이다.
그녀는 작년 5월 검사에서 엄마로부터 희귀한 돌연변이 유전자 PSEN1(프리세닐린1)를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변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65세 이전에 알츠하이머병 발병 확률이 매우 높다. 거의 50대 50이다.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은 29세 싱글 맘 에린 켈리와 8세 딸. 치료비 모금 페이지 캡처.
증세는 빠르게 진행됐다. 올 6월 뇌 영상 촬영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신경세포(뉴런) 손상 징후가 처음 포착됐으며, 조기발병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다.
켈리는 “처음엔 부정하려 했다”며 “처음 사흘 동안은 아무 일도 없는 척 했어요. 그러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결심했죠”라고 말했다.
의사들은 병이 얼마나 빠르게 진행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머지않아 켈리의 기억력, 사고력, 행동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점점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한다.
“벌써부터 작은 변화들이 느껴져요”라고 켈리가 말했다. “단어를 잊거나 서로 다른 단어의 낱말을 섞어서 말하게 돼요. 생각은 하는데, 단어들이 뒤섞여 버리는 거죠. 예전엔 이런 일이 없었어요.”
알츠하이머병의 근본적인 치료법은 아직 없다. 다만 진행을 늦출 수 있는 약물이 일부 국가에서 팔리고 있다.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은 29세 싱글 맘 에린 켈리와 8세 딸. 치료비 모금 페이지 캡처.
켈리는 어린 딸과 함께 오래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아직 어떻게, 무엇을 말해야 할지 확실히 모르겠어요. 아이가 너무 어리거든요. 어느 정도는 알려주겠지만, 가능한 오랫동안 보호해 주고 싶어요. 목표는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하는 걸 보는 거예요.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있고 싶어요.”
켈리의 의붓자매 제시카 심슨이 치료비 모금을 위해 온라인 페이지(GoFundMe)를 개설했다. 레카네맙이라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구하기 위해서다. 호주 보건당국은 이 약물을 승인하지 않았다. 공적 의료 시스템에서 구할 수 없어 18개월간 이뤄지는 치료를 받으려면 최대 9만 호주달러(한화 약 8100만 원)가 필요하다.
레카네맙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경도인지장애 및 초기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중 하나다. 기억 상실을 되돌리지는 못하고 진행 속도를 어느 정도 늦추는 효과가 있다.
심슨은 치료비 모금 페이지에 “에린은 진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너무 어려 호주의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없다고 들었다“면서 “이 치료제는 에린이 더 오래 일하고, 일상생활을 유지하며, 무엇보다 가능한 오래 에비의 엄마로 남을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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