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담하건대 이 시를 보고 화들짝 놀라는 사람이 수십, 수백 명일 것이다. 이런 시가 세상에 존재하는 줄을 몰라서 그렇지, 사실 이 시를 경험한 듯 느낄 사람은 수천, 수만 명일 것이다.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눈물의 설거지를 경험하지 않을 수 있나. 뽀드득 힘주어 그릇을 부시는데 눈물 콧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아예 잘됐구나’ 싶어 설거지통에 눈물과 콧물을 함께 떨구는 그런 경험 말이다.
물론 이 시에는 싱크대를 붙잡고 울었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설거지를 하다가 물을 찍어 타일에 시를 썼다고 나온다. 그 타일 속에는 바다와 방주가 있어 마음이 멀리 따라 나갔다고 나온다. 사실 그 바다는 눈물이 모여 이뤄진 것이었다고도 나온다. 시를 읽다 보면 ‘그래, 나도 눈물의 설거지 중에 저런 생각을 전개하고 싶었던 걸지 몰라’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시의 가장 거룩한 부분으로 시인은 그 눈물에 ‘복이 있나니’ 축복을 전해준다. 우린 참 추하게도 울었는데, 싱크대가 밧줄인 것처럼 붙잡고 울던 것이 흉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저 시인의 잔잔한 말을 듣자니 어느새 응어리가 풀어진다. 흔한 일상이 가장 섬세한 예술로 변모하는 지점에 바로 김소연 시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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