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남자와 어떤 사이냐? 그 사람을 제대로 알긴 아는 거냐? (남자를 사귄다는 사실을) 부모에게 한마디도 안 하다가 갑자기 결혼하겠다니, 아빠로선 딸이 불행한 결혼을 하도록 놔둘 수 없다.”(아빠) “제가 제 자신의 행복을 찾으면 안 되나요? 아빠가 원하는 좋은 집안 사람은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제가 불행해질 거라고는 생각 안 해요.” “아빤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구나.” “그거야 아빠 생각이죠. 저한테도 생각이 있지만, 말해 봤자 듣지도 않을 거잖아요.” “뭐라고?”
무슨 저녁 8시 반 일일드라마 속 진부한 시추에이션 같지만, 놀랍게도 일본영화의 전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1958년작 ‘피안화’의 한 장면이에요. 기업 상무로 일하며 딸 둘을 모자랄 것 없이 키운 아빠가 과년(過年)한 장녀의 혼처를 알아보던 중, 남자친구의 존재를 청천벽력처럼 까밝히면서 결혼을 선언한 딸과 벌이는 갈등 상황이죠.
‘내가 개 같이 일해 번 피 같은 돈으로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켜서 예쁘게 길러낸 딸이 얼굴만 반반한 가난뱅이 놈팡이한테 시집을 가겠다고?’라며 ‘본전 생각’에 분노가 치밀지만 겉으론 그렇게 말할 순 없으니 “너를 불행하게 만들 순 없다”고 남 생각해주는 척 말하는 ‘소유 본능’ 아빠와, 자기가 누구 덕에 먹고 입고 공부하고 예쁘게 자랐는지 산뜻하게 잊고 ‘결국 내가 잘나지 않았으면 이렇게 못 되었지’라고 확신하지만 겉으론 그렇게 말할 순 없으니 “저도 행복을 찾을 권리가 있어요”라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싸가지 없는 딸의 전형적 대립은 67년 전에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지요. 심지어 아빠는 둘째 딸로부턴 “봉건주의 덩어리”라는 악담까지 면전에서 들어요.
간단한 산수만 해봐도 재밌죠? 이 영화 속 딸들은 지금은 적어도 80대일 텐데, 이런 노인들도 20대엔 부모로부터 싹수가 노랗다는 소릴 들었단 얘기니까요.
오즈 야스지로 감독 유작 ‘꽁치의 맛’(1962년)의 아버지와 딸.[2] 전후(戰後) 가족 균열과 세대 갈등을 온유하고 적막한 시선으로 담아냄으로써 더욱 안타까움에 사무치는 정서를 길어 올린 야스지로의 유작 ‘꽁치의 맛’(1962년)에선 이런 세대 간 다툼이 봉합되는 수순으로 이어져요. 이 영화는 초로의 회사 중역으로 아내와 사별한 뒤 딸과 함께 사는 ‘히라야마’란 남자가 주인공인데, 집안일을 도맡아온 24세 딸 ‘미치코’에 대한 마음이 복잡해요. 엄마를 대신하겠다며 연애에도 담 쌓고 사는 딸이 없으면 쇠해가는 자신을 챙겨줄 사람이 없게 되죠. 하지만 이러다가 딸이 혼기를 놓치고 노처녀로 죽으면 어떡하나 하는 자책감도 들어요.
어느 날 중학교 은사를 초대해 동창들과 술자리를 가진 히라야마는 만취한 은사를 집에 데려다주다 은사의 딸과 마주치는데…. 그 옛날 어여뻤던 은사의 딸은 놀랍도록 망가진 얼굴을 한 채 아버지를 향한 원망의 시선을 레이저처럼 쏴대는 게 아니겠어요? 세상을 떠난 엄마를 대신해 아버지를 뒷바라지 하느라 노처녀로 폭삭 늙어버렸죠. 앗 뜨거! 은사의 모습에서 자신의 미래를 본 히라야마는 딸 미치코를 푸시해 ‘명문가 차남에다 키도 훤칠하고 똑똑한’ 남자에게 시집을 보내요. 딸의 결혼식이 끝나고, 홀로 취해 철지난 군가를 읊조리는 히라야마의 고독한 모습으로 영화는 막을 내려요.
이 영화는 놀라워요. 제목에 등장하는 꽁치는 시종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럼 왜 ‘꽁치의 맛’이냐고? 일본인에게 꽁치란 한국의 전어처럼 가을을 상징하는 생선. 결국 인생의 가을에 다다른 부모 세대는 이제 막 인생의 봄날에 불과한 자식 세대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를 꽁치의 몸처럼 내어줘야 하건만, 자식의 행복이니 어쩌니 말로는 그럴듯하게 포장하면서 기실은 이기심과 소유욕에 절어 자식 세대의 목에 빨대를 꽂고 쪽쪽 빨아먹고 있는 건 아니냐는 질문이자 통찰이지요.
[3] 우리가 당연히 여기지만, 가만히 따져 보면 음험한 이데올로기가 숨은 단어들이 있어요. ‘세대 갈등’이란 단어가 그렇지요. 세대 갈등? 말 그대로, 기성 세대와 청년 세대의 갈등이잖아요? 어른과 젊은이에게 똑같이 문제가 있으니 서로 반 발짝씩 물러나 소통하고 화합하라는 음모론이 담긴 불온한 단어임을 이젠 아시겠죠? 어떻게 부모와 자식 세대가 똑같이 잘못했을 수가 있겠어요? 도베르만과 치와와가 갈등이 생기면 공평하게 반 발짝씩 물러서는 방식으로 해결이 되겠어요?
야스지로가 물경 60여 년 전 꿰뚫어 보았듯, 세대 갈등이란 기성 세대의 이기심과 몰이해, 그리고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청년 세대의 불안과 초조와 신경증이 전제된 단어란 말이에요. ‘꽁치’인 부모가 자식에게 자기 살을 선물하고 장렬히 사그라지는 것이 생태계가 유지되도록 만드는 동물세계의 섭리예요. 부모 자식 간은 윈윈 관계가 아니고 제로섬 관계입니다. 기성 세대가 손해를 봐야 청년 세대의 미래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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