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꽃 시절이 저물어가는 아쉬움 속에서 봄날의 가슴앓이가 시작된다. 꽃잎을 띄운 채 또 다른 물줄기로 흘러드는 개울, 비를 머금은 회색 구름 사이로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는 순간, 하릴없이 자신을 소모하고 있다는 공허함이 짙어간다. 외진 벽촌의 무료한 삶을 달래주는 건 오로지 술, 옷자락에 덕지덕지 얼룩이 묻는 줄도 모르고 마구 마셔댄다. 세상을 떠난 친구의 혼백이 나의 적막을 달래줄까 싶지만, 이 먼 곳까지 그를 불러올 자신은 없다. 한데 봄 끝자락에 찾아오는 유일한 위안은 새벽녘에 들려오는 꾀꼬리 소리. 그 갸륵한 정성조차 잠시 잊었던 자신이 부끄러웠는지, 시인은 다시금 마음을 추스른다.
관직에 머물다 당 왕조가 멸망한 후에는 남쪽 타향에서 홀로 말년을 보내야 했던 시인. 봄의 끝자락에서 그가 느꼈던 상춘(傷春)의 회한은 결코 가볍지 않았을 터. 그 속에는 계절과 인생의 상실감, 그에 더하여 망국의 한까지 서려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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