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부터 기력까지 책임진 서동이 사랑한 ‘산약’[이상곤의 실록한의학]〈162〉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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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백제 서동왕자와 신라 선화공주의 사랑을 노래한 ‘서동요’. 삼국유사에 묘사된 서동에서 한자 ‘서(薯)’는 요즘 우리가 흔히 갈아 마시는 마를 뜻한다. 즉, 서동은 ‘마를 캐는 소년’을 뜻한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 하나. 백제 왕자는 그 많은 작물 중에서 왜 하필 마를 캤을까?

변변한 약물도 없고 알지도 못했던 삼국시대, 왕자 서동이 캔 마는 당시만 해도 아주 중요한 약물이었다. 실제 한의학에서 마는 ‘산에서 나는 장어’라고 할 정도로 남성성을 보강하는 약재로 알려져 있다. 최강의 강장제였던 것. 굳이 비교하자면 마를 캐는 소년은 지금 시대로 말하자면 발기부전 치료제를 만드는 제약 재벌의 막내아들쯤 되겠다.

순우리말인 마는 한자로는 서여(薯蕷)라고 쓴다. ‘서’는 밝다는 뜻이고, ‘여’는 토란과 닮았다는 말이다. 당나라 태종의 이름인 여와 송나라 영종의 이름인 서를 피하기 위하여 ‘산약(山藥)’이라고도 불렀는데, ‘산속에서 나는 진정한 약’이라는 뜻이다. 중국 명나라 한의서인 ‘의학입문’에는 “신장의 양기를 보강하고 정기를 보충하며 허리가 아픈 것을 멈추게 한다”고 약효를 설명한다.

야생 산약은 껍질을 제거하기 위해 깎다 보면 미끈거리는 점액질 때문에 잡지도 못할 정도이고, 먹기도 힘들며 손에 두드러기가 많이 생긴다. 껍질 속에 독소가 많은 탓이다. 산약의 가장 큰 효과는 역시 설사를 멈추고 비위와 대장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다.

인조 10년의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인목대비의 설사 증상이 매우 심해 여러 처방으로 치료를 했으나 낫지 않자 시약청이 산약죽을 연달아 처방해 효험을 얻은 기록이 있다. 실제 필자도 설사가 잦은 환자에게 산약을 처방해 증상을 개선해 완쾌시킨 경험이 적지 않다.

위축성 위염은 위의 표면인 점막이 만성염증으로 얇아진 상태다. 만성위염은 스트레스, 음주, 담배 등으로 인해 점막층이 손상되고 상피세포가 파괴되고 위벽이 얇아지면서 발생한다. 특히 동양인의 경우 과도한 밀가루 섭취는 위장의 점액을 흡수해 점막을 건조하게 만든다. 현대적인 식습관이 점막층에 많은 부담을 주는 것이다.

마의 또 다른 이름은 옥연(玉涎)이다. 구슬처럼 귀한 침이란 뜻으로, 점액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마의 점액 성분인 뮤신은 사람의 위 점막에서도 분비된다. 이것이 위를 코팅하는 역할을 하는데 부족하면 위산이 직접 닿아 위에 염증과 궤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마를 섭취하면 위축성 위염의 예방과 치료, 소화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 또 이 성분들이 몸을 튼튼하게 해 기력을 돋우는 역할도 한다.

고종 24년의 기록에 따르면 경상 감사 이호준이 “진상 산약이 아직 충실하지 않아 기한 안에 봉진할 수 없다”고 한 것으로 미뤄 마는 주로 경상도 지역에서 재배된 것으로 보인다. 마는 날것으로 먹고 찌거나 구워서도 먹는데, 가늘게 썰거나 믹서에 갈아서 생식(生食)하는 게 가장 약효가 좋다. 마에 함유된 효소가 열에 많이 약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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