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 장생(감우성)과 공길(이준기)은 연산(정진영)과 그의 애첩 녹수(강성연)를 풍자하는 놀이판으로 장안의 명물이 된다. 하지만 그들은 왕을 희롱했다는 죄로 의금부에 끌려와 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장생이 호언장담을 한다. “왕이 보고 웃으면 희롱이 아니잖소. 우리가 왕을 웃겨 보이겠소.”
‘왕의 남자’는 남사당패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작품으로, 왕 앞에서 목숨을 걸고 연희를 펼쳐야 하는 장생과 공길의 상황이 등장한다. 왕을 웃기면 살고 웃기지 못하면 죽는 그 판은 남사당패 연희에 자주 등장하는 ‘살판’, ‘죽을 판’ 그 자체다. 실제로 장생은 줄광대로 외줄 위에서 아슬아슬한 기예를 펼쳐 사람들을 긴장하게도, 또 박장대소하게도 만드는 인물이다. 잘 놀면 사람들도 웃기고 돈도 벌 수 있지만, 삐끗하면 죽을 수도 있는 줄타기 인생. 그것이 바로 광대들이 처한 삶이라는 걸 장생은 보여준다.
‘왕의 남자’는 예술의 정치 풍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탈을 쓰고 양반 같은 기득권자들의 행태를 꼬집어 민초들을 웃게 만드는 우리네 연희에 있어서 풍자는 숨 막히는 신분 사회에 그나마 트인 숨통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네 대중문화에서 신랄한 정치 풍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한때 정치인들이 희극인들을 고소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으니 왜 이렇게 됐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예술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그저 웃고 넘어가면 될 일을 문제 삼는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기 어렵고 그런 토양에서 예술이 꽃피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모쪼록 새 정부가 예술의 표현에 있어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그래야 서민들의 숨통도 트일 수 있을 테니. 장생의 말처럼 왕이 웃으면 희롱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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