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건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2023년 대통령직속 국민통합위원회는 과거 10년 치 사회통합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 국민들의 행복감은 느리지만 조금씩 높아지는 중”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의 ‘세계행복보고서 2025’에는 꽤 다른 결과가 담겨 있다. 한국의 ‘행복도’는 147개국 중 58위로, 2024년 52위에 비해 순위가 하락했다. 또 이 자료에서 한국의 ‘경제적 수준’은 21위였으나 ‘삶에서의 선택의 자유도’는 104위, 그리고 ‘사회적 지지 수준’은 84위 등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인의 행복도가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 지나치게 낙천적인 진단임을 보여준다.
한국인의 행복도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진단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심리사회적 알로스타시스(allostasis)’의 관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알로스타시스는 뇌가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해 각종 대처 자원과 관계된 예산을 편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체 및 정신적 시스템을 운영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이 시스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흔히 ‘생체시계’라고 불리는 시상하부다.
생체시계가 작동하는 방식은 통상의 시계와는 다르다. 시계가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을 측정한다면, 생체시계는 스트레스가 축적되는 정도를 평가한다. 일반적으로 시간의 흐름과 스트레스가 축적되는 정도는 비슷하게 보조를 맞추게 된다. 예컨대, 오전 7시에 아침 식사를 한 다음 5시간이 경과하는 것과 신체가 5시간 동안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정도는 상응하는 정보에 해당된다.
그런데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경우, 이 둘의 균형이 깨지게 된다. 마치 경제 위기 상황에서 환율이 급격한 변동을 보이는 것처럼, 물리적인 시간과 스트레스의 매칭 비율이 깨지는 것이다. 그래서 하룻밤 새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다면 물리적으로는 24시간이 지났을지라도 시상하부는 마치 24년이 흐른 것처럼 작동할 수도 있다. 프랑스 혁명 때의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와 중국 춘추시대의 정치가 오자서(伍子胥)의 급성 백발증이 그 예다.
심리사회적 알로스타시스의 관점에서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지표로 자살률과 출산율을 들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출산율은 2013년부터 러시아와의 갈등이 증폭돼 현재 전쟁까지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출산율과 그 변화 양상이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이는 현재 우리 사회가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음을 나타낸다. 즉, 한국인 약 5200만 개의 시상하부가 급성 백발증이 유발될 때처럼 과부하 상태에 있는 것이다.
‘전쟁 같은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실제 전쟁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위기 앞에서 눈을 감는 것은 미성숙한 대처의 전형이다. 미성숙한 사람은 고통을 외면하고 회피하는 반면, 성숙한 사람은 고통조차도 기꺼이 끌어안는다. 성숙한 사람은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가장 어두운 순간과 마치 동전의 앞뒷면처럼 맞닿아 있으며 행복의 본질이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기쁨에 있다는 점을 믿는다. 부디, 새 정부는 한국인들이 겪고 있는 전쟁 같은 삶의 문제를 이전 정부처럼 지나치게 낙천적으로 바라보지 말고, 우리 앞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기를. 현실을 직시할 때에만 비로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가 보이는 법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