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최고 사법기관인지를 놓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간에 벌어지는 힘겨루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KSS해운 법인세 부과 공방이다. 대법원은 2011년 세금 부과가 정당하다고 판결했지만, 헌재는 실효된 부칙을 근거로 판결한 것은 헌법 위반이라며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를 근거로 KSS해운이 낸 재심 청구를 대법원이 기각하자 헌재는 기각 판결을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대법원은 이 결정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KSS해운은 국세청이 세금 부과를 취소하지 않는 건 위헌이라는 소송을 헌재에 냈다. 국세청이 헌재 결정보다 대법 판결을 우선시하는 건 부당하다는 점을 확인해 달라는 취지가 담겨 있다. 헌재는 지난달 13일 이 사건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하고,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지했다. 주목되는 건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7일 ‘재판소원’을 도입하는 헌재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과 시점이 맞물린다는 점이다.
헌재 권한 확대와 직결된 숙원 사업
이 제도가 도입되면 법원 판결이 헌법소원 대상에 포함돼 판결에 문제가 있는지 헌재가 결정할 합법적 권한을 갖게 된다. KSS해운과 관련한 헌재의 움직임은 민주당의 법안을 지지한다는 점을 보여주려 한 것으로 읽힌다. 헌재는 헌재법 개정에 공감한다는 의견서도 국회에 냈다. 나아가 법원이 헌재의 결정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점을 법에 명시하고,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판결의 효력을 정지할 수 있게 하자고 제안했다.
재판소원 도입은 헌재의 숙원 사업이다. 재판소원이 전면 허용되면 헌재의 권한이 대폭 확대되고 위상이 한층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도 국민의 기본권 보장 확대 차원에서 재판소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헌법에 부합하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 따져봐야 할 문제가 여럿이다.
이론적으론 사실 판단 및 법률 해석으로 이뤄지는 법원의 재판과 재판에 의한 기본권 침해 여부를 다루는 재판소원이 구분되지만, 둘 사이의 경계는 희미하다. 헌재가 제시한 ‘헌법적으로 중요한 원칙이나 청구인의 기본권 보호에 필요한 경우’에만 재판소원의 대상으로 하자는 기준도 모호하다. 재판소원이 시행된다면 헌재가 헌법상 법원의 권한인 사법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3심제가 실질적인 4심제로 바뀌면서 판결 확정까지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도 늘어난다.
또 재판소원이 법제화되면 헌재의 업무가 폭증할 것이다. 독일의 경우 헌법소원 가운데 약 90%를 재판소원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헌법소원은 전원재판부에서 판단하므로 재판관만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따라서 재판소원 도입 여부에 대해 먼저 충분히 숙의한 뒤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필요 최소한의 사건만 대상이 되도록 정교하게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속전속결로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
사법부 압박에 장단 맞추는 듯 비쳐
법리적 쟁점과 함께 반드시 짚어봐야 할 게 민주당에서 재판소원을 추진하는 배경이다. 대법원이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자 민주당은 사법부를 압박하는 여러 방안을 들고나왔다. 재판소원도 그중 하나로 평가된다.
그런데 헌재가 이에 장단을 맞추는 것으로 비칠 만한 행보를 보이는 건 신중하지 못하다. 헌재의 무게를 감안한다면 조직의 이익이 걸린 문제라도 때를 가려야 하지 않겠나. 향후 헌재가 민감한 사건을 여권에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하면 재판소원 도입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의심받을 가능성도 있다. 가벼운 처신으로 그동안 쌓아온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헌재가 무겁게 받아들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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