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윤성이]대통령이 곁에 둬야 할 사람, 멀리해야 할 사람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5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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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주인인 나라” 의지 밝힌 李대통령
‘여론 중개 통로’ 언론과 적극적 소통하고
충성 앞세운 측근보다 장관-관료 가까이에
인물보다 시스템에 기반한 국정 운영해야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언제 어디서나 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의 주권 의지가 일상적으로 국정에 반영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실력 없는 정치세력일수록 권력 유지를 위해 국민을 편 가르고 혐오를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이는 특정 진영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사유화하고 정치를 분열의 도구로 삼는 모든 행태에 대한 경고로 읽힌다. 이 대통령의 취임사는 국민을 가까이하고 권력을 좇는 정치는 멀리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약속이 실제 실천으로 이어진다면, 고질적인 ‘측근 정치’를 없애고 국민이 주인인 나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이 권력 주변의 강성 지지층이나 측근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국정 운영을 공적 시스템 위에서 작동시키려는 분명한 태도가 필요하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약속도 이를 구체화하려는 진정성 있는 노력이 없다면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 국민을 국정의 중심에 두기 위해선 무엇보다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 대통령이 5200만 국민의 ‘열망과 소망’을 품겠다고 약속했다면, 찬성과 지지뿐 아니라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언론과의 소통은 필수적이다. 언론은 여론을 중개하는 통로이자 대통령이 국민과 간접적으로 만나는 공간이다. 불편한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비판 앞에서 당당히 입장을 밝히는 태도가 민주적 리더십의 출발점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을 중단한 뒤 ‘불통’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정치는 소통의 예술이며, 지도자의 자질은 비판을 어떻게 대하느냐에서 갈린다.

대통령이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이를 국정에 일상적으로 반영할 때 비로소 ‘국민이 주인인 나라’가 실현된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 결정 과정에 다양한 시민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단순히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는 방식만으로는 시민의 정치적 요구를 담아내기에 한계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주목받는 제도가 ‘시민의회’다. 2019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독립 문제를 둘러싼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시민의회를 소집했고, 약 1년간의 숙의 끝에 정책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이후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의회 논의를 거쳐 최종 정책을 확정했다. 이 대통령이 강조한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시민 참여를 제도화하려는 이러한 실험에 대해 열린 자세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국정 전반을 혼자 책임질 수 없다. 특히 복합 위기가 중첩된 오늘날의 현실에서는 인연이나 충성심보다 제도에 기반한 전문성과 책임감 있는 인사가 우선돼야 한다. 그 누구보다 대통령 본인이 이를 자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국정의 안정성과 투명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은 절대적 충성을 앞세운 측근 인사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들의 사례는 그 경고를 분명히 보여준다. 모두가 결국 가까운 측근, 그것도 사인(私人)에 의해 국정이 왜곡되고 정치적 실패를 자초했다. 권력이 사적 인맥에 집중되는 순간 통치는 불통으로 흐르고 정치는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 충성보다 전문성을 중시하는 인사 원칙, 사람보다 시스템에 기반한 국정운영만이 이러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길이다.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은 인물 중심의 권력 구조를 경계하는 데서 시작된다. 사람보다는 시스템이 주도하는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실 참모보다 관련 부처의 장관과 전문 관료들이 더 가까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실이 지나치게 국정운영의 중심으로 부상하면 결국 문고리 권력과 비선 실세라는 구태정치가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약속한 ‘진정한 민주공화국’은 말만으로 이룰 수 없다. 그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누구를 가까이하고 누구로부터 거리를 둘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필요하다.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약속은 측근 중심의 폐쇄적 정치 문화를 넘어서려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대통령이 곁에 둬야 할 이는 권력 주변의 충성파가 아니라 국민이고, 멀리해야 할 대상은 권력만을 탐하는 정치세력이다. 정치의 중심에는 권력의 지속이 아니라 민생과 공공성이 놓여야 한다. 국민을 가까이하고 권력 카르텔을 멀리하는 정치, 그것이야말로 민주공화국을 향한 첫걸음이 돼야 한다.

#국민 주권#민주공화국#정치 소통#권력 분산#시민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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