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송인호]지속가능한 미래, 국민의 경제 인식에 달려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6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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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병 걸려 급전직하한 광물富國 나우루
공공 확대에 ‘국가부도’ 위기 겪은 그리스
“일자리 달라” 기본소득 투표 부결 스위스
단기이익 매몰되면 국가 운명 금세 달라져

송인호 객원논설위원·KDI 경제교육·정보센터 소장
송인호 객원논설위원·KDI 경제교육·정보센터 소장
남태평양 한복판, 자동차로 30분이면 한 바퀴 돌 수 있는 작은 섬나라 나우루. 인구 1만여 명의 이 나라는 1960, 1970년대 한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호주의 원조에 의존해 간신히 연명하는 처지가 됐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우루에서 발견된 인광석은 말 그대로 횡재였다. 연간 인광석 수출량이 100만∼200만 t에 달했고, 1980년대 나우루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넘었다. 같은 시기 일본이 1만 달러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작은 섬나라가 당시 얼마나 부유했는지 알 수 있다. 나우루에는 세금이 없었고 주택, 학비, 의료 서비스가 모두 무료였으며, 유학 경비마저 정부가 지원했다. 그러나 국가의 소득원인 광물 산업은 자국민보다 외국 자본가와 노동자들의 차지였다. 심지어 빨래와 청소까지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신해 줬다. 말 그대로 정부가 국민에게 복지 혜택과 편안한 생활을 보장했던 것이다. 이러한 정부 정책에 나우루 국민은 적극적으로 지지를 보냈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인광석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정부는 바닷가에 항구를 지어 국민에게 새 일자리를 만들어주려 했지만, 오랜 무상복지에 익숙해진 국민은 노동보다는 소비를 즐겼다. 정부 역시 다가오는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리지도, 대응하지도 않았다. 결국 나우루의 운명은 참혹하게 바뀌었다. 2000년대 들어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500달러까지 급락하며, 아시아 최고 부국에서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실업률은 90%에 달했고, 2006년에는 은행마저 문을 닫아 금융 거래조차 불가능해졌다. 현재 나우루의 운명은 호주가 쥐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지에서 온 보트피플을 수용하는 대가로, 호주가 나우루 경제를 지원하고 있다.

이 사례는 정부와 국민이 단기적인 감정에 휘둘려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할 때, 20년도 채 지나지 않아 국가의 운명이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작은 섬나라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때 유럽연합(EU)의 선진국이었던 그리스 사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스 정부는 2000년대 초반 과도한 복지 포퓰리즘의 결정판인 공공부문 확대, 관대한 연금 혜택, 공무원 증원 정책을 펼쳐 국민의 인기를 끌었다. 당시 재정건전성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결국 이러한 포퓰리즘 정책이 본격화된 지 10년도 채 안 돼, 2010년 그리스는 국가부도 위기를 맞았다. 그리스는 EU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전체 실업률은 25%, 청년 실업률은 50%를 넘어섰다.

사회적 혼란은 장기적인 경제 침체로 이어졌고, 국가 경쟁력은 급속히 떨어졌다. 2008년 1인당 GDP가 약 2만4000달러였으나, 국가부도 위기 직후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며 2013년 약 1만7000달러까지 떨어졌다. 정부와 국민이 순간의 이익과 감정에 기대면 선진국도 예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반면, 스위스는 앞선 국가들과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2016년 스위스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지급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했다. 누구나 월급처럼 일정 금액을 받는다는 이 제안은 진보적 이상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스위스 국민의 선택은 압도적이었다. 무려 77%가 반대표를 던졌다. ‘공짜 돈’을 국민 스스로 거부한 것이다. 스위스 국민은 당장의 혜택보다 미래 세대의 경쟁력 확보와 일자리 창출을 요구했다. 눈앞의 이익이 가져올 부작용을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참고로 최근 스위스의 1인당 GDP는 10만 달러를 넘고 있다.

20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추락한 나우루, 10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포퓰리즘으로 국가부도 위기를 맞은 그리스, 그리고 ‘공짜 돈’을 거부하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선택한 스위스. 이 세 나라의 극명한 사례는 분명한 시사점을 던진다. 국민의 경제 인식과 정부의 지지 방향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미래까지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이 사례들의 핵심은 경제를 이해하는 국민과 그렇지 못한 국민의 선택 차이에 있다.

만약 어느 나라에 ‘세금은 적게 내고 복지는 더 많이 받자’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면, 최소한의 경제 원리를 다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설령 경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더라도 ‘지금은 힘들어도 미래를 위해, 그리고 당장 나의 이익보다는 미래 세대를 위해’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여기서 경제교육은 지속가능한 국가의 기초를 세우는 일이자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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