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기 인류의 생존 전략은 ‘표준’ 아닌 자의 다른 감각[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14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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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생존의 유산, 다양성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우리는 다름을 장애처럼 여긴다. 하지만 과거에는 살아남기 위한 가장 날카로운 무기로 인정받았다. 최근 과잉행동을 보이는 아동에 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인간의 능력은 다양하게 발현된다. 하지만 사회의 다수와 다른 능력을 지닌 자들은 쉽게 배척받곤 한다. 천재적 재능과 자폐 스펙트럼 장애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을 함께 지닌 이들의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이 어떠할지 떠올려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과거 인류는 이런 ‘돌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고고학과 신경과학의 최신 연구를 통해 우리가 배척해 온 여러 습성에서 천재 혹은 다름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알타미라 동굴의 발견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은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 동굴 예술을 보여준다. 이 동굴은 1879년 스페인의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사우투올라가 여덟 살짜리 딸과 함께 발견했다.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동굴 ‘알타미라 동굴’ 천장에서 발견된 벽화의 들소. 상처 입은 들소를 표현한 이 그림은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선명한 색채감 등으로 현대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출처 위키피디아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동굴 ‘알타미라 동굴’ 천장에서 발견된 벽화의 들소. 상처 입은 들소를 표현한 이 그림은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선명한 색채감 등으로 현대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출처 위키피디아
당시 학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현대의 작품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가 높여준 높은 예술 수준 때문이었다. 생동하는 듯한 30여 마리의 동물 그림을 두고 ‘미개한 원시인’의 작품일 수 없다는 의견이 강하게 나타났다. 심지어 사우투올라는 조작범이란 누명도 썼다. 그를 앞장서 비난했던 고고학자 에밀 카르타야크는 23년이 지난 1902년에야 학술지에 글을 실어 사과했다. 하지만 이미 사우투올라가 숨진 지 14년이 지난 뒤였다.

알타미라 동굴 사건은 현대 서양 문명, 나아가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 얼마나 강한지를, 때론 그것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동시에 ‘빙하기 시대 사람들의 엄청난 예술성과 천재성은 어디에서 비롯됐는가’라는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빙하기 시대 쏟아진 예술품

미국 작가인 찰스 로버트 나이트(1874∼1953)가 그린 ‘퐁드곰 동굴의 크로마뇽인 예술가들’. 크로마뇽인들이 동굴에서 벽화를 그리는 모습을 담았다. 출처 위키피디아
미국 작가인 찰스 로버트 나이트(1874∼1953)가 그린 ‘퐁드곰 동굴의 크로마뇽인 예술가들’. 크로마뇽인들이 동굴에서 벽화를 그리는 모습을 담았다. 출처 위키피디아
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대체로 구석기 시대가 시작된 3만5000년 전에서 1만7000년 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동굴 이외에도 5만 년 전∼1만2000년 전 사이의 빙하기 동굴에서 현대 예술기법과 차이가 없는 동굴 벽화가 발견됐다. 현대의 화가들도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수준의 벽화다. 물감 같은 도구도 없던 시절, 제대로 된 미술 교육도 받지 않은 이들이 그린 작품이라는 점에서 놀랍다. 이들은 밝은 빛이 없는 동굴 벽에 낮에 본 동물의 움직임과 생동감을 기억해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현대적 의미의 ‘천재’에 가까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구석기 시대의 ‘라스코 동굴’(프랑스 남서부) 벽화. 말과 사슴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생생하다. 출처 위키피디아
구석기 시대의 ‘라스코 동굴’(프랑스 남서부) 벽화. 말과 사슴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생생하다. 출처 위키피디아
어쩌다 후기 구석기 시대에 예술적 감성이 폭발했는지를 놓고 많은 논의가 있었다. 한동안 이들이 흰버섯과 같은 환각제를 먹고 벽화를 그렸을 것이라는 주장에 목소리가 실렸다. 하지만 알코올과 같은 다양한 환각 작용을 하는 음료나 약품이 현대에도 광범위하게 소비되고 있고 그런 약리효과로 천재적 예술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이 해석에는 한계가 있다.

최근 들어 동굴 벽화를 남긴 화가들의 특성은 ADHD와 자폐 스펙트럼의 특성과 매우 유사하다는 주장이 눈길을 끌고 있다. 영국 출신 화가 스티븐 윌트셔가 대표적인 예다. 그는 미국 뉴욕 맨해튼을 헬리콥터로 잠깐 돌아보고 나서 며칠에 걸쳐 순전히 기억력에 의존해 사진처럼 똑같이 그려냈다. 물론 윌트셔는 사진처럼 정지 화면을 복원했지만, 구석기 시대 동굴 벽화의 화가들은 살아서 움직이는 동물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는 있다.

어쨌거나 잠깐 본 기억을 머릿속에서 다양하게 조합하고 특정한 디테일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기법은 일맥상통한다. 이를 두고 고고학자들은 과거에 ADHD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훨씬 많았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구석기 시대의 예술이 단순히 기록하는 것을 넘어 그 이미지를 상징화하고 주술적인 의미를 담아냈다는 이유에서다.

프랑스 남부 ‘쇼베 동굴’ 벽화. 사진 속 그림은 들소와 순록을 담고 있으며, 유럽 후기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출처 위키피디아
프랑스 남부 ‘쇼베 동굴’ 벽화. 사진 속 그림은 들소와 순록을 담고 있으며, 유럽 후기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출처 위키피디아
최근 유럽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 400여 개의 동굴 벽화를 분석한 결과가 나왔다. 벽화에 찍힌 낙관, 손가락 문지르기 등의 흔적을 분석해 보니 벽화를 그린 사람의 나이는 대개 2∼12세였다. 예술이라고 하면 흔히 풍부한 경험을 가진 노장을 떠올린다. 하지만 구석기 시대 주술적인 예술은 천재성이 있는 아이들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그들의 예술품을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비범한 능력을 지닌 천재들의 능력을 경외하고, 영적인 소통을 위한 수단으로 보았을 수도 있다.

빙하기, 자폐가 필요했던 이유

5만 년 전∼1만 년 전 사이의 혹독한 빙하기 환경은 인류에게 큰 시련이었다. 약 3만 년 전에는 최후 빙하기가 최정점에 달했다. 중부와 북부 유럽은 두꺼운 빙하로 덮여 있었고, 그나마 사정이 나은 스페인 등의 남부 유럽도 평균 기온이 영하 2도∼영하 9도였다. 지역적 편차가 있겠지만, 대체로 지금의 북극권과 비슷한 수준이다. 아무리 추위에 대비해도 겨울에 야외에서 2∼4시간 이상을 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동굴 속에서 지내야 하지 않았을까.

인간은 그 힘든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양한 주술, 의례, 신화 등을 만들었다. 제한된 외부 활동으로 얻어낸 지식을 공동체 내 다른 성원들과 공유해야 했다. 사냥감인 동물의 행동 패턴 등을 파악하기에는 순간 관찰력 등이 뛰어난 자폐 스펙트럼을 지닌 자들이 유리했다. 이런 빙하기가 몇만 년 지속되는 동안 자폐 스펙트럼의 유전자는 인류가 살아남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나아가 추운 날씨를 딛고 매머드와 같은 대형 사냥감을 잡는 데 필요한 사냥 기술과 도구 제작에도 그들의 천재성은 필수였다.

최근 괴베클리 테페의 발견으로 인류는 구석기 시대 말기에 이미 많은 문명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빙하기를 견디면서 천재성에 기반한 기술의 발전이 쌓여 있었고, 그것이 동굴이 아니라 들판으로 옮겨져 발현된 것이다.

AI 시대, 다양성의 가치

우리는 평준화된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고, 다름을 치료나 교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그러한 습성은 인류 생존의 큰 위기였던 후기 구석기 시대에는 생존의 무기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비범한 감각으로 자연의 특징을 간파했고, 남다른 집중력으로 새로운 도구를 만들며 신을 상상하고 예술을 창조했다.

후기 구석기 시대에 빙하기를 이겨내고 인간의 능력을 일취월장시켰던 그들의 능력은 농경사회의 탄생과 함께 죄악시됐다. 주의력 결핍은 공동체에서 일탈로 간주되기도 했다. 구석기 시대에 필수적이었던 주의력 결핍자들이 보인 고도의 집중력과 신속한 대치력은 농경사회에서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1만 년을 지배해 온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지식과 노동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고, 기존의 직업은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반복적이며 데이터에 기반해 판단을 내려야 하는 업무는 AI의 도움으로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됐다. ADHD적 특성과 자폐 스펙트럼이 가진 창의성, 고도의 집중력, 적응력, 발상의 전환은 이러한 시대에 필요한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기존에는 비현실적으로 여겨진 ADHD적 아이디어가 AI의 보조로 혁신적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견해도 늘고 있다.

다양성은 위험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빛나는 생존의 유산이다. AI 시대의 생존전략은 표준화된 인간이 아니라 ‘남과 다른 인간’에게 달려 있다. 그러한 다양한 특성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살아남았다. 그뿐 아니라 예술과 종교를 비약적으로 발달시킬 수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다양성이 필요한 지금, 고고학적 통찰과 ADHD와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전향적 태도가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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