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반노동 정책 폐기를 촉구하며 16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근로조건의 결정과 관계없는 정치적 요구를 앞세운 파업은 불법이다. 하지만 이번이 민노총의 마지막 불법 파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민노총의 투쟁 기조가 변해서가 아니다.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이는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현실화하면 파업의 대상과 명분이 크게 확대돼 불법 파업이 될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불법 파업 족쇄 풀어줄 노란봉투법
경제계는 사용자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노조법 2조 개정에 따른 후폭풍을 특히 우려한다. 현행 노조법에선 사용자의 범위를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로 한정하지만, 노란봉투법은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넓혔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노란봉투법 법안은 5건인데, 그중에선 단순히 업무를 위탁한 경우에도 사용자로 볼 수 있다는 법안까지 있다. 사용자 범위가 무한정 확대되는 것이다.
노란봉투법이 통과하면 하청업체 근로자들은 “이게 다 원청 책임”이라며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 원·하청 구조가 복잡한 조선, 철강, 건설, 자동차 등의 업종에서 특히 갈등이 커질 것이다. 많게는 수천 개의 협력사를 둔 대기업들은 1년 내내 교섭 요구에 시달릴 수 있다. 공공부문 노조들은 “대통령이 책임지라”고 목소리를 높일지도 모른다. 기업들은 사용자성 여부를 가려달라며 법원으로 달려갈 것이다. ‘진짜 사장’을 가리는 솔로몬식 재판이 이어지는 동안 법적 불확실성으로 기업 경영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노조법 2조 개정의 진짜 폭탄은 노동쟁의 개념의 확대다. 노동쟁의가 있어야 파업 등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 현행 노조법은 노동쟁의를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정의하는데, 노란봉투법은 ‘결정’이라는 표현을 뺐다. 단 두 글자지만 차이는 엄청나다. 지금은 임금 협상 등 단체교섭 대상에 대해서만 파업을 할 수 있는데 근로조건 전반으로 분쟁이 확대되면 해고자 복직, 부당 노동행위 철회 등을 이유로도 파업을 할 수 있다. 더 나아가면 정부 정책 등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안이 파업의 명분이 될 수 있다.
물론 사용자의 처분 권한 밖인 정치파업은 법원에서 불법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노조엔 큰 부담이 없다. 노조법 3조가 개정되면 불법 파업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노란봉투법으로 하청노조가 원청과 교섭할 수 있게 되면 불필요한 분쟁과 파업이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함부로 휘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구두 약속만 믿고 무작정 칼자루를 쥐여 줄 순 없다.
최저임금처럼 사회적 합의로 풀어야
하청 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막고 노동 3권을 보장하겠다는 노란봉투법의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법적 정합성과 현실 적합성이 부족한 채로 처리하기는 곤란하다. 시기도 좋지 않다. 김기승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는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지난해 기준으론 경제성장률이 0.4%포인트 정도 하락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성장률 0.2%포인트를 끌어올리려고 1,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합쳐 45조 원을 쏟아부었는데 더 이상의 경제적 도박은 무리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노란봉투법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했다. 1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선 장관이 되면 곧바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이지 노란봉투법 그 자체는 아닐 것이다. 17년 만에 내년도 최저임금을 노사공 합의로 결정한 것처럼 노조법 개정도 사회적 대화를 통해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좋게 봐도 수단일 뿐인 노란봉투법을 절대화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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