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약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더욱 가혹하다. 기후 재난도 마찬가지다. 취약계층들은 더욱 혹독한 추위와 더위에 노출된다. 올여름 장마전선이 예년보다 빠르게 북상한 탓에 7월 초부터 한여름 같은 무더위가 시작됐다. 요 며칠 전선의 영향권에 들면서 잠시 더위가 주춤하고 있지만, 곧 다시 전선이 북상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될 것이다. 더위는 누군가에겐 잠시 피해 가면 되는 불편에 불과하다. 하지만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틀 전기조차 아까운 사람들에겐 목숨을 위협하는 재앙이 될 수 있다.
실제 7월 초까지만 7명이 온열질환으로 목숨을 잃었는데, 대부분이 어르신들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 많은 수치다.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노인은 대표적인 기후 취약계층이다. 특히 가족 없이 혼자 사는 경우에는 위험이 더욱 커진다.
문제는 이렇게 취약한 어르신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평균 수명 증가, 유례없는 초저출산으로 인해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국가다. 지난해 말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45년이면 노인 인구가 37%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뿐만 아니다. 결혼과 출산이 줄며 혼자 사는 노인도 늘고 있다. 통계청은 노인 1인 가구가 2037년 335만 명, 2052년에는 496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계한다. 50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기후 취약계층 조건에 들 수 있다는 의미다.
이미 유소년 인구가 줄고 노인 인구만 남아 고령화율이 크게 오른 지방자치단체들엔 비상이 걸렸다. 전남도 기초지자체 상당수는 드론 순찰을 시작했고, 폭염특보 발령 시 역내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그 어르신들의 자녀들에게까지 알림 문자를 보내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국내 대표 혹서 도시 대구는 쪽방 주민들에게 쿨토시 등 냉방용품을 지급함은 물론 삼계탕 같은 보양식까지 지원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런 단편적인 지원으로 고령화와 온난화라는 쌍끌이 재난 피해를 막기란 역부족이다. 앞으로 한국은 더 더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사라지지 않고 축적돼 지구 기온을 계속 끌어올린다. 국립기상과학원에 따르면 한낮 기온이 33도 이상인 폭염 일수는 2050년까지 35일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매년 한 달 넘는 폭염이 반복될 것이란 이야기다.
취약계층의 폭염 저항성을 높일 장기적 대책이 필요하다. 냉방기기 설치 지원, 전기요금 감면은 물론이고 노인 1인 가구의 돌봄, 건강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하면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 드론, 원격 감지기, 위치 기반 이상 신호 감지 시스템 등이 그 예다. 쉼터 등 지역 복지관을 중심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해 이상 징후를 즉시 감지할 수 있도록 하고, 이상 신호가 감지되면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지역 응급망도 갖춰야 한다.
남의 일이 아니다. 급증하는 솔로, 딩크족은 언젠가 노인 단독 가구가 될 것이다.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고 안전한 건 아니다. ‘부모를 모신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기후 취약계층 증가는 국가가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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