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소비자 보호 실패한 관치금융의 몸집 불리기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21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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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부국장
박용 부국장
새 정부가 들어서면 관행처럼 정부 조직 개편이 시작된다. 이 어수선한 틈을 타고 부처, 기관끼리 영역 다툼과 몸집 불리기가 벌어진다. 이재명 정부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 26년 만의 금융감독 체제 개편이 논의되는 가운데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 논란이 불거졌다.

소비자 보호 명분 기관 신설 필요한가

금융감독 개편을 주도하고 있는 국정기획위원회 내에서 금융감독원의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를 떼어내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을 신설하는 방안이 거론된 것으로 알려지자, 금감원 노조는 국정위 청사 앞에서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 분리를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임직원들은 반대 호소문을 냈다. 조직이 쪼개질 것을 우려해 실력 행사에 나선 것이다.

금감원 예산의 85%인 연간 3300억 원의 감독 분담금을 내는 금융회사들은 기관 신설에 따른 중복 규제와 감독 분담금 증가를 걱정하고 있다. 금감원 금소처를 독립기관으로 만들면 원장 자리 1개가 생기고 인사 총무 홍보 등 관리 부서가 함께 늘어난다.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는 세계적 흐름이지만 그 수단으로 막대한 비용이 드는 규제 기관을 또 만들어야 하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정부 규제는 정확성이 높고 효과적인 반면 디지털 금융과 같은 기술과 시장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가 더딘 약점이 있다. 경직된 규제가 금융산업을 세계적 흐름과 동떨어진 ‘갈라파고스 금융’으로 만들 수 있다. 영국은 2012년 금융감독 기관을 금융사의 건전성을 감독하는 기관과 영업 규제 및 소비자 보호를 전담하는 기관으로 이원화했다. 영국 의회 금융서비스규제위원회는 지난달 내놓은 보고서에서 “규제 당국의 관할 확장과 중복으로 복잡한 규제 환경과 높은 규제 준수 비용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한번 만들어진 규제 기관은 인허가나 제재 권한을 이용해 자가 증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신설은 특히 신중해야 한다.

금감원은 1999년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을 통합해 설립됐다. 은행 증권 보험 제2금융권 감독 업무를 물리적으로 통합하는 바람에 현재도 업권별 종적 규제 체계가 유지되고 있다. 당장 검사와 감독 권한이 있는 금융소비자 보호기관을 새로 만들면 중복 규제와 업권별 감독 체계와 충돌이 불가피하다. 이 같은 현실적 한계 때문에 검사와 감독 권한 없이 기관만 독립하는 방식도 논의되고 있다. 이 경우 소비자 분쟁을 해결할 실질적 수단이 부족해 분리의 실익이 떨어진다.

처벌에서 피해 예방과 구제로


규제 기관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도 있다. 당국의 제재는 금융회사 및 임직원을 사후적으로 처벌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거나 구제하는 데는 비효율적이다. 사후 제재 중심의 규제를 소비자 피해 회복과 구제의 관점에서 재설계하는 일이 필요하다. 당국의 조사에 시간이 걸리고 막상 부당이득을 얻은 금융회사에 과징금을 부과해도 이 돈은 피해자가 아닌 국고로 들어간다. 이 때문에 규제 기관의 검사 자료 공유나 과징금 일부를 기금화하는 방식으로 소비자 피해 회복 지원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자는 제안도 있다. 이런 변화는 금융업계 및 사회적 공감대 없이는 만들 수 없으며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금감원 산하 금소처는 2012년 설치됐다. 그사이 역대 정부는 금융감독 개혁을 명분으로 교수, 관료에 이어 검사 출신 금감원장까지 앉혔다. 하지만 금융 사고는 되풀이됐고, 소비자 피해는 계속됐다. 문제는 조직이 아니라 이를 운영하는 사람과 제도다. 지난 13년간 관치금융의 실패를 바로잡지 않고 규제 기관을 새로 만들어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발상은 소비자 보호를 핑계로 한 위인설관 몸집 불리기일 뿐이다. 정책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 관점에서 봐야 해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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