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서열화로 적성-지역 명문대 의미 잃어
지역 대학 되살려야 지역 활기 찾을 수 있어
대규모 종합대 아닌 특화 분야 ‘强小대’ 적절
획일적 규제 폐지하고 파괴적 혁신하게 해야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윤석열 전 대통령은 올 4월 헌법재판관의 전원 일치로 파면됐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계엄을 선포한 결과다. 파면 이후 2개월 만에 치른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선출됐다. 이는 국민의 관심이 ‘내란 심판’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엄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일이다. 마땅히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혹시라도 정부와 여당이 ‘내란’을 정치적으로 계속 이용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매달려야 할 과제는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설계하고 이를 추진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는 위기에 처해 있다. 경제의 저성장이 고착화됐고, 양극화가 심화되며 중산층은 감소하고 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빠른 속도의 고령화에 따라 생산과 소비의 핵심인 15∼54세 인구도 급속하게 줄고 있다. 핵무기로 위협하며 오물 풍선까지 보내는 북한에 더해, 미국과 중국의 깊어진 갈등은 우리 안보에 커다란 위협이다. 최근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피크 코리아(Peak Korea)’는 대한민국이 경제·사회적으로 성장의 정점을 지나 이제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다는 심각한 경고로 보인다. 새 정부가 꾸려 갈 5년은 대한민국 발전과 쇠락의 변곡점이다. 사회 여러 분야의 혁신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교육이다. 이미 공교육은 빈사 상태에 가깝다. 국민은 사교육비로 매년 약 30조 원을 지출하고 있다. 그간 모든 정부는 한결같이 교육 혁신을 다짐하면서 출범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전환은 없었다. 교육감 선거로 교육 현장에 정치가 들어오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 교육 정책에 이념이 자리 잡았고, 여기에 정권이 좌우로 오가며 긴 호흡이 필요한 장기적 계획은 한 번도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새 정부가 내세운 대표적 교육 정책은 ‘서울대 10개 만들기’이다. 실제로 생기를 잃은 지역의 대학을 되살리는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젊은이가 사라지면서 지역 자체가 활기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지역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소위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필두로 한국 대학이 확연히 서열화돼 있기 때문이다. 수년 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의 입시 비리가 드러나자, 정부는 서울 소재 16개 대학에 대해 정원 40% 이상을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선발할 것을 강제했다. 대학 서열을 정부가 정해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고, 이 규제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여기에 더해 전국의 50만 명에 가까운 수험생을 단 하루의 수능으로 완벽하게 한 줄로 세우는 것이 우리의 참담한 교육 현실이다. 이런 서열화로 수험생들의 대학 선택은 적성보다 성적에 맞추는 일이 됐고, 결국 지역의 명문대는 모두 빛을 잃었다.
선진국은 지역에 일류 대학이 있는 나라다. 지역의 대학에 우수한 학생들이 찾아오게끔 정부가 나서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그러나 학령 인구는 이미 현격히 줄었다. 지역에 서울대 같은 대규모 종합대학은 만들 수도 없고, 또 만들어도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그런 측면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아주 잘못된 이름이다. 지역의 대학은 서울대와 달리, 특화된 분야에서 경쟁력을 지니는 ‘강소대학’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총장 임기에서부터 직인 크기까지 대학의 모든 것을 획일화시킨 규제를 폐기하고, 대학 스스로가 파괴적 혁신을 모색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우리의 초중등 교육은 마치 잔뜩 엉킨 실타래 같은 느낌이다. 모든 매듭을 단번에 풀 수는 없지만, 그래도 10년 후에는 오늘보다 조금 나아진 교육 환경을 기대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사실 실타래의 가장 큰 매듭은 치열한 경쟁의 대학 입시로, 여기에서 학생의 능력을 어떤 방식으로 평가하는가에 따라 초중등 교육은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창의력을 오히려 깎아내는 오지선다형 수능은 최악의 평가 방법이다.
초중등 12년간, 우리 학생들은 정답 고르기에 몰두하고 있다. 즐거운 지적 탐구보다 지겨운 암기가 중요하다. 이로 인해 학교는 전혀 즐겁지 않은 곳이 됐다. 청소년들의 행복지수는 세계 최하위권이고, 자살률은 최상위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수능을 바꾸는 일은 급선무다. 우선은 서술식 문항을 한 해에 5%씩 늘려서 10년 후에는 주관식과 객관식이 절반씩 되면 좋겠다. 그리고 수능으로 학생을 몇 % 선발하는가는 각 대학의 자율에 맡기면 된다. 새 정부에서는 교육이 변화의 길로 들어서길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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