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함께 해야 할 초저출생 극복 방안―미해결 과제와 골든타임 살리기’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이진한 의학전문기자“난임 치료 지원이 저출생 대책의 전부는 아니지만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2023년 기준 국내에서 난임시술 지원을 통해 태어난 출생아 비율은 약 11%다. 출생아 10명 중 1명 이상이 난임 시술로 태어난다는 뜻이다. 저출생 대책에서 난임 치료 지원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이유다.
현재 정부는 난임 시술에 대해 체외수정 20회, 인공수정 5회로 출산당 최대 25회까지 지원하고 있다. 지원 횟수만 놓고 보면 전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이와 같은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 정책 덕분에 난임 시술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난임 시술을 하려면 사전에 난자 동결 시술이 필요한 경우도 생기는데 이때 국가 지원이 시술 비용의 50%로 상한액이 200만 원 정도다. 그런데 50% 한도 지원 정책으로 인해 시술 비용이 적을수록 지원도 적어지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저비용 책정 병원이 지원을 덜 받기 때문에 가격 상승이 나타나기도 한다.
더구나 병원마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비급여 의료 행위가 추가로 붙다 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공공 의료기관인 서울의료원의 경우 난자 동결 총비용이 250만∼300만 원(진료, 주사, 투약, 채취 시술 등을 포함한 사이클 기준)으로 저렴한 반면 모 민간 의료기관엔 약 500만 원 이상으로 2배 가까이 차이 나기도 한다. 현장에선 난임시술 관련된 비급여 비용이 너무 많아 배보다 배꼽이 큰 경우가 많다는 불만이 나온다.
이뿐만 아니다. 난임 시술 수요 증가에 따라 난임 시술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약제인 생식샘 자극 호르몬(고나도트로핀) 제제의 공급 중단 및 부족 현상이 최근 몇 년간 고질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2023년부터 현재까지 공급 중단 또는 부족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보고된 생식샘 자극 호르몬 제제는 10개에 달한다.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함께 해야 할 초저출생 극복 방안―미해결 과제와 골든타임 살리기’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국가적 재난을 야기하는 저출생이라는 위기 앞에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행 방안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뤄졌다. 토론회 발제자로 참여한 서울대 의대 이정렬 산부인과 교수는 “최근에 난임 치료제가 공급되지 않아 쓸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며 환자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많다”며 “난임 치료제 생산량은 일정한데 수요는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으로 전 세계적으로 난임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한국도 다른 국가들과 (난임 치료제를 공급받기 위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패널로 참여한 홍성규 한국난임가족연합회 사무국장도 “난임 치료는 미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누구나 원할 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요 난임 치료제들은 7월부터 진행되고 있는 ‘사용량-약가 연동제(PVA)’ 협상 대상 의약품에 포함돼 추가적인 약가 인하 문제까지 마주하게 됐다. 약의 사용량이 늘면 약가를 추가로 내리라는 것이다. 글로벌 제약사들 사이에서 글로벌 평균 가격 대비 국내의 낮은 약가로 인해 국내에 신약 출시를 하지 않거나 이미 출시된 의약품의 공급을 중단하는 일명 ‘코리아 패싱’에 대해서는 필자가 지난해에도 다룬 적이 있다.
저출생이라는 전 세계 공통의 위기 앞에 글로벌 수요량이 급증하고 있는 난임 치료제 역시 ‘코리아 패싱’의 예외가 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추가적인 약가 인하는 제약사 입장에서 한국에 대한 공급 우선순위를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이는 치료제 공급의 제한으로 이어져 결국 환자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
저출생 극복의 핵심 방안으로 꼽히는 난임 치료에는 시간적 한계, 즉 ‘골든타임’이 존재한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치료받을 기회 자체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치료제 공급 문제도 안정적인 치료 환경 마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안이자 필수 해결 과제로 꼽힌다.
난임 치료 지원은 난임 당사자들이 원하는 시점에 치료 혜택을 받고 임신과 출산으로 이어질 때 진정 빛을 발한다. 수많은 난임 당사자들이 출산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정부가 난임 해결의 환경 및 난임 치료제의 안정적 공급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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