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최근 한 고교에서 친구 사이인 학생 셋이 동반 자살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청소년 자살 관련 기사를 더 자주 접하게 됐는데,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느낌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인 이른바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국가 차원의 노력이 이어진 결과, 노년층의 자살률은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10대 자살률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2023년 기준 10대 자살률은 10만 명당 7.9명으로, 2015년의 4.2명과 비교해 거의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10만 명 중 8명도 안 되는 문제로 왜 호들갑이냐’고 말할 이들도 있겠지만, 이는 명백한 문제 상황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중고교생 5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3명 이상이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10대의 주요 사망 원인이 사고나 질병인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자살이 가장 큰 원인이다.
청소년 자살률이 높아지는 가장 큰 이유는 갈수록 심해지는 학업 및 입시 스트레스다. ‘예전에도 그랬다’, ‘외국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지나친 경쟁 분위기가 너무 이른 시기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한국만의 특수성이 있다. 좋은 성적만이 성공하고 생존할 수 있는 길이라는 믿음이 아이들에게 주입된다. 성적이 떨어지면 인생이 끝났다는 극심한 공포와 압박에 시달리며 스스로를 실패자로 낙인찍는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편안한 친구 관계도 어렵다. 모두가 경쟁자처럼 느껴지고, 겉으로는 친해 보여도 속으로는 자신의 실패를 바란다고 생각해 학교생활 자체가 두렵다. 흔히 이런 아이들 뒤에는 드라마 ‘스카이캐슬’처럼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부모가 있을 것이라 여기지만, 실제 진료실에서는 다른 모습도 자주 보인다. 부모는 ‘시험 좀 못 봐도 괜찮다’며 지지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아이들은 그 말을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정의 영향력은 약해지고, 사회의 극단적 분위기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 탓이다.
서로를 비교하고 줄 세우는 데 익숙한 집단주의 문화 위에, 소셜미디어를 통해 삶의 격차가 더 쉽게 드러나면서 상대적 박탈감과 열등감은 더욱 심화됐다. ‘경제적 성공과 그에 도달하기 위한 성적’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에만 삶의 의미를 두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패배자라 여긴다.
이미 힘들어진 아이들에게는 적절한 치료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바꾸는 일이 시급하다. 출산율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를 고민하기에 앞서, 아이들이 자살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요즘은 경쟁이 당연하다’며 방치할 게 아니라, 다른 선진국들의 사례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경제적 성공과 성적이 중요한 가치인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이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삶의 의미는 다양한 조각들을 천천히 모아 가며 찾는 것임을 아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2017년 팟캐스트를 시작으로 2019년 1월부터 유튜브 채널 ‘정신과의사 뇌부자들’을 개설해 정신건강 정보를 소개하고 있다. 7월 기준 채널의 구독자 수는 약 27.9만 명이다. 에세이 ‘빈틈의 위로’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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