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비판과 비난의 정확한 사전적 의미를 아는가. 비판은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함’이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잘못된 점’을 ‘고쳐주기 위한’ 행위이다. 반면 비난은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이란 뜻이다. 중립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기준으로 하기보다는 사적이고 감정적인 의도를 가지고 말하는 쪽에 가깝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렇게 완전히 다른 의미와 의도를 가진 비판과 비난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비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중학생이 되면 비판에 대한 방어적 반응이 감소하게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 비판을 건설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 시기를 넘긴 아이라고 비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는 순응의 문화가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지 타인의 비판에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중고등학생들도 자신에게 꼭 필요한 비판조차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심지어 어른들도 누군가 자신을 비판한다 싶으면 대뜸 화부터 내는 경우가 많다.
비판을 수용하는 경우, 교사가 계속 지각하는 학생에게 “너 계속 이렇게 지각하다가는 학교에 아예 못 다니게 될 수도 있어”라고 얘기하면 아이는 그 내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한다. ‘아, 지각을 더 했다가는 학교에 못 다니게 될 수도 있겠구나. 앞으로 조심해야겠다’라고 말이다. 그런데,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 ‘에잇, 자기는 뭐 지각 안 하나? 잘난 것도 하나 없는 게 이래라 저래라야’라며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누가 “이런 게 문제야”라고 말하면 ‘아, 그런 문제점이 있겠네. 고쳐봐야겠다’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냥 무조건 기분 나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비판이 안 먹히는 이유는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나를 기분 나쁘게 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나의 발전을 위해 해주는 말이라고 생각할 만한 믿음이 부족한 것이다. 부모들은 이런 신뢰가 쌓이기도 전에 비판부터 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아주 극단적인 비난을 섞어서 말이다. 그러니까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아이를 위한 것이라 해도 비판하는 말은 듣기에 불편할 수 있다. 일단 그런 말을 하기 전 아이와 나 사이에 충분한 신뢰가 쌓여 있는지 점검해 본다. 가능한 한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하지만 신랄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 긍정적인 비판이었는데 표현 방법이 너무 신랄하면 아이는 그것을 비난으로 받아들여 자존감까지 무너질 수 있다.
사춘기 아이에게는 먼저 아이를 인정하고 공감하는 말을 충분히 해준 다음, 지적과 훈계는 요점만 간단히 해주는 게 좋다. “너 그렇게 공부 안 하다가 거지처럼 살게 된다”식의 극단적인 말은 오히려 부작용만 낳는다. 아무리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라도 극단적인 말을 들으면 일단 기분이 나빠져서 비판을 비난과 독설로 받아들이기 쉽다. 지금, 이 순간의 잘못만 짧게 말해 주고 끝내야 한다. “지금 너의 그런 행동은 앞으로 문제가 될 수 있어” 정도가 적당하다. 전지전능한 신처럼 먼 미래의 일까지 모든 것을 다 아는 척 예견하는 건 금물이다.
한 가지 더 주의할 것은 비판할 때는 감정 조절을 잘해야 한다. 비판적인 말에 부정적인 감정 표현이 섞이는 순간 아무리 긍정적인 비판이라도 비난이 돼버린다. 따라서 비판을 하기 전에는 나의 감정 상태를 먼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감정적으로 흥분할 것 같다면 차라리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낫다.
사춘기 아이들은 대부분 대화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얘기 좀 하자고 하면 금세 우거지상이 돼서 “왜요?”라고 하며 눈을 치켜뜬다. 아이들의 이런 거부 반응은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아이들 입장에서 볼 때, 어른들과 하는 대화는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면서 마음을 열고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대화 좀 하자”라고 하고선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쏟아놓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에게 부모가 얘기 좀 하자는 것은 곧 야단맞는 것, 훈계 듣는 것이 돼 거부감이 생기는 것이다. 대화를 하자고 했다면 일단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야 대화다. 비판과 훈계를 하기 전에 아이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마음을 읽고, 공감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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