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현장에 세계 최초로 도입한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가 국회에서 ‘교과서’ 지위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AI 교과서는 학생 수준에 맞춘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려는 취지로 올 1월부터 일부 초등학교 3, 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영어, 수학, 정보 과목에 도입됐다. 그러나 정치권의 힘겨루기 속에 ‘교육 자료’로 격하하는 법안이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했고, 이르면 8월 초 본회의에서 가결되면 관련 사업은 사실상 좌초될 수 있다.
이 사업에 참여한 에듀테크 스타트업들은 막대한 시간과 기술을 투자해 왔다. 예컨대 AI 교육솔루션 스타트업 ‘엘리스’는 AI 교과서에 멀티 에이전트 기반 튜터봇 ‘AI 헬피’를 개발·탑재해 부적절한 표현을 걸러내고, 학생 눈높이에 맞춰 친숙한 말투로 소통하는 대화 환경을 제공했다. 또한 자체 개발한 국산 클라우드 기반 모듈형 데이터센터로 국내 최고 수준 보안 인증(CSAP)을 획득해 학생 데이터 유출을 철저히 차단했다.
이러한 노력은 교육 현장의 포용성을 높였다. 실제로 대구 용계초에선 평소 영어 말하기를 어려워하던 발달장애 학생이 AI 교과서의 음성인식 기능 덕분에 또박또박 문장을 말하기도 했다. AI 수업이 도입된 교실에선 학생들이 각자 태블릿PC로 문제를 풀고, AI 튜터로부터 피드백을 받아 자신감을 키우고 있으며, 이런 사례는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형 AI 교과서를 글로벌 교육시장에 수출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었다.
AI 교과서 사업은 추진 과정에서 이미 여러 반발을 겪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현장의 의견 수렴 없이 밀어붙였다며 ‘교육계의 4대강 사업’이라고 비판했다. 교육부와 참여 업체들의 준비 부족도 지적됐다. 너무 촉박한 일정에 맞춰 무리하게 추진한 탓에 교사 연수와 인프라가 미비했고, 초기 품질 관리도 부족했다는 평가다. 일부 학부모단체는 아이들이 태블릿에 중독될까 우려된다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게임이나 소셜미디어처럼 자극적인 콘텐츠와 달리 수업용 기기는 중독을 유발하기 어렵다고 본다. 오히려 올바른 사용 지도를 통해 과의존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결국 낮은 초기 완성도, 교원 및 학부모와의 소통 부족, 기득권의 혁신 저항 등이 겹쳐 AI 교과서는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게 됐다.
어렵사리 도입된 AI 교과서가 다시 좌초될 위기에 놓인 지금 필요한 것은 사업의 폐기가 아니라 개선을 통한 발전적 대안 모색이다. 이대로 접어버린다면 쌓아온 기술력과 교육 혁신의 싹을 잘라버릴 수 있다. AI 교과서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보다 중요한 것은 미래 세대가 AI 시대에 도태되지 않도록 교육 혁신에 머리를 맞대는 일이다. 지금이 오히려 콘텐츠 품질 보완, 교사 연수 등을 통해 AI 교과서를 미래교육의 핵심 도구로 키울 기회다. 한발 물러서 시범 운영을 연장하며 효과를 검증하고 개선점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종이 교과서 시절에도 새 교육과정 도입 때마다 진통은 있었지만 결국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의 교육도 시행착오를 거쳐 진화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미래 경쟁력을 위해, 진정성 있게 노력해 온 스타트업의 혁신이 지속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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