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인천 연수구에서 아들을 사제총기로 살해한 조모 씨(62)의 경찰 진술이다. 총기를 만드는 일을 해본 적도 없던 그가 유튜브만 보고 총을 만든 것이다. 대단한 기술은 필요 없었다. 유튜브만 있으면 됐다.
총뿐만 아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더 큰 희생으로 마무리됐을 수도 있었다. 그의 집엔 이튿날 정오로 알람이 맞춰진 시한폭탄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 집은 단독주택이 아니다. 총 38가구가 사는 아파트다. 실제 살상력은 아직은 불분명하지만 최소 화재가 아파트를 덮쳤을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이번 사건으로 한국인들이 총기 난사 사건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미국을 보며 혀를 차는 시절이 끝났다고 하면 과장일 것이다. 아직 그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총기 청정국’ 같은 수식어가 한국과 나란히 쓰일 일이 조만간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든다. 이 사건의 비극적 면모와 파급력 때문이다. 모방 범죄가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나 국가가 일일이 들여다보기 힘든 개인의 집에서 유튜브를 보고 총을 만드는 세상에 이를 막을 방법은 매우 제한적이다.
물론 정부도 움직였다. 경찰은 사건 발생 이틀 만에 사제총기 규제 강화 대책을 내놨다. 불법 무기 자진 신고 기간을 늘리고, 유튜브 등 온라인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최근 5년간 8893건의 총기 제작 관련 게시물을 삭제·차단 요청했다는 점도 공개하며 불안감을 잠재우려 했다.
하지만 이 대책에는 한계가 있다. 유튜브와 같이 사제총기 제작법이 공유되는 플랫폼을 규제하는 방법이 없다. 현재 한국 법은 사제총기 제작법 정보를 올린 사람은 처벌한다. 처벌 수위도 강하다. 사제총기로 살해당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사건으로 관련 처벌 수위를 높인 일본이 최대 1년 징역인데, 한국은 최대 3년 징역이다.
제작법을 유튜브에 올린 사람이나 유튜브 법인이나 그 정보로 수익을 벌어들이는 것은 같다. 왜 유튜브 법인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돼야 하나. 2016년 경찰관이 사제총기에 맞아 사망한 오패산 사건에서도 범인은 인터넷을 보고 총기 제작법을 공부했다고 했었다. 근본적 대책이 없으니 사건이 반복되는 것이다.
해외는 다르다. 독일은 불법 콘텐츠를 24시간 내에 삭제하지 않으면 플랫폼에 최대 5000만 유로(약 700억 원) 벌금을 부과한다. 영국은 플랫폼 매출의 10%까지 벌금을 매길 수 있다. 호주도 5억 원 이상의 벌금을 부과한다. 이들 국가는 플랫폼을 단순한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책임 있는 관리자’로 본다.
한때 한국엔 ‘마약 청정국’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마약 유통을 제때 제대로 막지 못해 그 지위를 잃었다. 이젠 10대도 마약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총기도 마찬가지다. 불법 무기 제작 정보를 퍼뜨리는 플랫폼을 막지 못한다면 집집마다 총과 폭탄이 숨어 있는 사회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총기를 가진 사람이 늘어나면 미국처럼 자위권을 명목으로 총기를 사용하는 사람 역시 늘어날 수 있다. 누구도 그런 사회를 바라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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