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윗물이 뻔뻔하니 아랫물도 뻔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30일 2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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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재판 받던 사람이 대통령 되고
수사받아야 할 사람이 총리 되니
장관들은 스스로도 못 믿을 거짓말 늘어놓고
차관급 기관장은 거의 ‘악’ 소리 날 수준

송평인 칼럼니스트
송평인 칼럼니스트
김민석 총리처럼 배추 농사에 2억 원을 투자해 월 450만 원씩 벌 수 있다면 나도 그러고 싶다. 누구도 못 믿을 말을 하면서도 통장 하나 증거로 내놓지 않았다. 그는 또래들이 고참 대리나 신참 과장을 하고 있을 나이에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으니 운동권의 쓴맛을 본 게 아니라 운동권의 단물을 빤 첫 386세대다. 그 후 한동안 정치 낭인이 된 것은 정몽준으로 줄을 잘못 섰다가 그렇게 된 것으로 자업자득일 뿐 운동권 경력과 상관없다. 게다가 불법 정치자금까지 받아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범죄 전력을 고려하면 수사를 받아야 할 사람이 총리가 됐다.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표절과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갑질에 대해서는 더 보탤 말이 없다. 둘을 같이 사퇴시킬 줄 알았다. 그렇게 못 한다면 강선우를 버리고 이진숙을 살리려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선택은 강선우였다. 인터넷에 ‘갑질녀라고 욕하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이불 덮어준 적 있더냐’라는 말이 회자됐다. 강선우까지 접어야 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대통령비서실 파견 근무 중일 때 부인이 서울 한남동 일대 도로 부지를 ‘지분 쪼개기’ 방식으로 매입해 7∼8배의 차익을 얻었다. 조 장관이 부지를 매입한 5개월 뒤 뉴타운 구역으로 지정됐다. 도로 부지는 주택이나 상가와 달리 재개발 지정이 안 되면 돈을 다 날릴 수 있다. 100% 확신이 없으면 살 수 없다. 그는 ‘투기가 아닌 횡재’라고 했는데 아무나 누릴 수 없는 그런 횡재의 기회가 하필 대통령비서실 파견 근무 때 주어졌다면 장관 자리는 줘도 마다해야 하는 것이 공직자였던 사람의 도리가 아닐까.

군의 문민 통제는 군을 유권자가 선출한 권력, 즉 대통령이나 의회의 통제하에 둔다는 의미일 뿐 국방장관을 민간인으로 임명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럼에도 군 면제자 대통령이 기어이 임명한 방위병 출신 안규백 장관은 14개월 복무 후 대학에 복학했다고 주장했으나 병적에는 22개월 근무로 돼 있다. 8개월이 왜 연장됐는지, 탈영 혹은 징계와 관련이 있지 않은지 의혹이 제기됐다. 나도 민주화 직전에 군 복무를 했지만 그때가 쌍팔년도(단기 4288년·서기 1955년) 군대가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병사들이 목숨처럼 여기는 제대 날짜가 함부로 바뀔 수 없다. 그는 기록 제시 없이 국가의 병무 행정 착오라고 강변했다.

장관으로 임명된 자들의 뻔뻔함의 수준이 이미 전례를 넘었지만 아직 임명을 앞둔 꼬리 부분이 남아 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딸은 그가 대표로 재직했던 네이버 미국 자회사에 별다른 경력 없이 취직한 뒤 미국 영주권을 받고 회사를 그만뒀는데 그는 딸이 회사에 지원한 줄도 몰랐다고 한다. 최 후보자라면 누가 그런 변명을 하면 믿어 주겠는가. 윤석열 정부의 첫 조각에서 낙마한 장관들이 대부분 아빠 찬스와 관련이 있다. 아빠 찬스로 오해받을 일을 했으면 딸을 위해서라도 장관 지명을 수락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북한이 주적이냐는 질문에 사실상 아니라고 답한 이들만 이종석 국가정보원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영훈 노동부 장관, 권오을 보훈부 장관 등 4명이나 된다. 노무현 정권에서 주적 표현을 뺀 장본인이었던 이 원장은 “북한을 주적이라고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으나 무엇이 어렵다는 건지 알 수 없다. 보훈 경력 하나도 없는 권 장관도 “북한을 주적이라고 표현하기는 애매하다”고 했으나 역시 뭐가 애매하다는 건지 알 수 없다. 민노총 위원장 시절 ‘김일성 조문’ 방북을 시도했던 김 장관은 요리조리 질문을 피해 다녔다. 정 장관만 “북한이 주적이냐”는 질문에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는데 그것은 단호함이 아니라 다른 세 사람과 달리 일말의 염치도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주적 대신 위협세력이라고 말장난을 했으나 김정은은 뭐 어려울 것도 애매할 것도 없다는 듯 남한을 향해 주적이란 표현을 날렸다. 그것은 주적을 주적이라고도 부르지 못하는 자들을 향한 조롱이자, 비굴한 자들에게 비굴함을 깨닫게 하면서 그 이상의 충성을 요구하는 주먹 세계 특유의 압박이었다.

대통령의 눈이 너무 높아서 걱정이라는데 거리에는 ‘윗물이 뻔뻔하니 아랫물도 뻔뻔하다’라는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무슨 다른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인사 청문이 있는 장관급이 이럴진대 그런 것도 없는 최동석 인사혁신처장, 김의겸 새만금개발청장 등 차관급 이하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대통령#형사재판#장관후보자#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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