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의 세계로 들어간 물리학자[이기진의 만만한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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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교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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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동네 단골 치킨집 주인의 권유로 탁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치킨집 아저씨는 서울 종로구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탁구교실 회장이다. “교수님 몸만 오세요.” 화·목요일마다 두 시간 반씩 탁구를 배우고 있다. 코치 선생님에게 20분 배우고 나머지 시간은 로봇과 친다. 도를 닦듯이 나 홀로 거울을 보고 무한 반복의 스윙 연습을 한다.

탁구, 참 어렵다. 평생 가르치는 입장에서 살다가 학생 입장이 돼보니 배우는 게 정말 힘들고 어렵다. “이렇게 해보세요.” 그대로 따라 해보지만, 잘되질 않는다. 코치 선생님의 공을 엉뚱한 방향으로 받아치면 지은 죄가 없음에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유튜브를 보고 머릿속으로 ‘이렇게 하면 되겠다’ 생각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탁구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올 때 ‘물리학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쉬운 거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탁구(table tennis)는 식민지 인도에 살던 영국인들이 더운 날씨에 집 안 응접실에서 테니스를 즐길 목적으로 고안했다는 설이 있다. 탁구에 대한 공식 기록은 1890년 영국인 데이비드 포스터가 탁구 게임에 대한 특허를 출원한 것이 최초다. 중국이 탁구에 워낙 강세를 보여 탁구의 종주국처럼 생각되지만, 시작은 유럽이다. 올림픽 내 탁구의 역사도 짧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탁구라는 운동은 과학자 뉴턴의 물리법칙 교과서 같다. 뉴턴의 제1법칙인 ‘관성의 법칙’은 탁구공의 궤적을 설명한다. 탁구공을 상대방이 탁구채로 받아치지 않으면 그 공의 운동 상태는 변하지 않는다.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자신의 운동 상태를 지속한다’는 법칙을 따르는 것이다.

제2법칙인 ‘가속도의 법칙’은 탁구의 핵심 법칙이다. 공을 칠 때의 힘이 공의 속도를 결정한다. 가속도가 힘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탁구의 묘미인 스핀 역시 라켓 러버와 공 사이의 마찰력에 따라 결정된다. 공과 러버의 마찰력, 탁구채를 휘두르는 힘과 각도의 조절은 탁구공의 변화무쌍한 궤적을 만들어낸다. 제3법칙인 ‘작용-반작용의 법칙’은, 날아오는 공에 대해 탁구채가 가하는 힘과 각도에 따른 반작용으로 공의 궤적을 설명할 수 있다.

초기의 탁구공은 코르크나 고무에 천을 덧대 만들었다. 탄성이 강하고 무거워 탁구의 묘미인 스피드를 즐길 수 없었다. 1900년대 들어 열가소성 합성수지인 셀룰로이드 공이 개발돼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그 후 2014년 플라스틱 공으로 바뀌었고, 현재는 충격에 강하고 내열성이 좋은 ABS 플라스틱 소재의 공이 사용된다. 탁구공의 질량은 구기 종목에 쓰이는 공 중 가장 가벼운 2.7g이다. 같은 크기인 골프공(45g)의 6% 정도다. 지름은 4cm다. 스윙의 힘과 러버의 마법 같은 마찰력으로 때로는 총알 같은, 때로는 마구 같은 공을 만들어낼 수 있다.

탁구를 시작하고 꿈이 생겼다. 그냥 시간을 보내는 취미도 아니고 건강을 위한 목적이 아니다. 홀연히 탁구채를 들고 아무도 모르는 탁구장에 나타나 그 탁구장을 제압하고 홀연히 사라지는 ‘탁신’(탁구의 신)이 내 꿈이다. 멀고도 험한 길이겠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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