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엄한 일출의 찬가가 아니다. 새벽빛을 밀고 올라오는 태양처럼 시인은 세상의 어둠을 걷어내려는 결연한 결기를 보여준다. ‘뜬구름이 시야를 가려도 두렵지 않은’ 기개는 장차 자신에게 닥칠 수 있는 기득권 세력의 중상모략에 대한 은유적 응답이다. 이는 시인이 도덕적 고결함과 자신감을 가지고 가장 높은 곳에 서 있어 가능한 것이다. 청운의 뜻을 품은 서른 살 관리 초년생은 이렇듯 개결(介潔)한 이상, 사회 개혁의 소명의식을 한 편의 짤막한 시로 응축한다. 실제 자신이 신법을 추진하여 개혁을 본격화하기까지 아직은 15, 16년 가까이 남은 시점이지만, 치열한 에너지는 진작부터 갖고 있었던 셈이다.
이 시와 맥락을 같이하는 앞 시대의 시가 있다. 당나라 왕지환(王之渙)은 ‘천 리 먼 곳을 바라보고자 다시 한 층을 더 오르네’(등관작루·登灌爵樓)라 했고, 두보는 ‘언젠가 저 정상에 올라 뭇 산들을 굽어보리라’(망악·望岳)라는 시구를 남겼다. 이들은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작아 보인다고 말한 공자의 웅장한 기상을 계승하고자 했다. 하나같이 높이 올라 더 멀리 보려는 당찬 낙관주의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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