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스파이로 활동한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올드리치 에임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정일천 가톨릭관동대 초빙교수·전 국정원 국장어떤 이가 적국의 스파이가 되는 동기는 매우 다양하다. 이데올로기 같은 개인적 신념에 따라 변절하기도 하고, 약점을 잡혀 협박을 당하거나 조직에 대한 복수심으로 스파이 활동에 가담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흔하고 강력한 동기는 돈이다. 실제 스파이 역사에는 금전적 이유로 조국을 배신하고 적국의 첩자가 된 사례가 넘쳐난다.
미국 해군 장교 존 앤서니 워커는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미국의 군사기밀을 소련에 넘겨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 대표적 인물이다. 1967년, 과도한 빚에 시달리던 그는 미 워싱턴 주재 소련대사관을 찾아가 미 해군의 암호 시스템 키카드를 제공하며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스파이가 됐다. 그는 해군 장교였던 친형은 물론이고 아들까지 해군에 입대시켜 스파이 활동에 끌어들였고, 특히 미 해군 암호통신 담당자를 포섭해 100만 건이 넘는 기밀자료를 빼돌렸다. 그의 행적은 1985년 미 연방수사국(FBI)에 이혼한 전 부인의 신고로 18년 만에 드러났다. 그는 스파이 활동으로 1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첫 사례로 기록됐다.
미 중앙정보국(CIA) 내 최고위급 내부 스파이로 알려진 해럴드 니컬슨 역시 돈 때문에 변절한 인물이다. 베테랑 정보관이자 일중독자였던 그는 1994년 말레이시아 근무 당시 이혼 위자료와 자녀 양육비 문제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다가 러시아 해외정보부(SVR)에 포섭됐다. 1996년 체포될 때까지 CIA 훈련소의 교관으로 일하며 훈련생의 신상 정보와 내부 비밀문건을 넘기고 30만 달러 이상을 받았다.
돈에 눈이 먼 스파이로는 CIA 요원 올드리치 에임스도 빼놓을 수 없다. 1983년 그는 이혼을 앞두고 새 연인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해결책으로 소련대사관에 제 발로 찾아가 스파이가 되겠다고 제안했다. 당시 그는 대소련 비밀작전과 해외 스파이 명단을 다루는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었으며, 이 정보를 넘긴 대가로 막대한 돈을 받았다. 그 결과 최소 13명의 자국 스파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는 고급 차량을 구입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이어가며 의심을 샀고, 결국 9년 만에 적발됐다.
냉전 시기 소련 정보요원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환멸과 자본주의에 대한 동경 등 이데올로기적 이유로 변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미국 등 서방 정보요원들의 이탈은 대부분 금전적 유혹에 기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국 스파이의 활약상을 다룬 실화 드라마에 감명받아 대학 졸업 후 KGB에 지원했다고 한다. 이처럼 정보기관 요원들이 스파이라는 평범하지 않은 직업을 선택한 데에는 돈이 아니라 애국심이나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명예 혹은 사명감 같은 특별한 동기가 있다.
정보기관 요원에게 금전적 보상이 직업 선택의 동기가 돼서는 안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은 국가 안보를 책임지고 비밀을 다루는 공직자이기 때문이다. 요즘 평범한 직장인이 돈 때문에 첨단기술을 외국에 유출하는 산업스파이가 되기도 한다. 시대가 변하며 직업관도 달라졌지만 대한민국의 정보기관만큼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과 헌신을 우선시하는 인재들로 채워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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