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 말 폐쇄되는 닛산 옷파마 공장
닛산, 작년 6조 원 적자로 위기… 1961년 설립 ‘회사 상징’ 공장 폐쇄
“고용 유지” 약속에도… 직원, 지역 주민 불안 고조
폭스콘, 공장서 전기차 생산 검토
지난달 21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의 옷파마역 일대. 영업을 하지 않는 상점들이 가득하다. 최근 경영 악화에 직면한 닛산은 1961년부터 옷파마에서 운영해 오던 공장을 2027년 말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공장 폐쇄로 지역 경제가 더 나빠질 것이란 우려가 높다. 요코스카=황인찬 특파원 hic@donga.com
황인찬 도쿄 특파원《지난달 21일 일본 도쿄에서 철도로 50분 떨어진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의 옷파마를 찾았다. 인구 약 3만 명의 작은 마을이지만 일본 재계, 특히 자동차 업계에선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로 여겨진다. 1961년 문을 연 일본 최초의 승용차 대량생산 공장인 닛산자동차(닛산)의 ‘옷파마 공장’이 있기 때문이다. 각종 자동차 관련 연구소와 테스트 시설을 갖춰 ‘기술의 닛산’을 상징하는 장소로도 꼽힌다.》
최근 국내외 시장에서 모두 고전하고 있는 닛산은 이 공장을 2027년 말 폐쇄하기로 결정했다고 지난달 15일 발표했다. 지난해 6708억 엔(약 6조30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생존 위기에 몰리자 회사의 상징적인 공장마저 문을 닫기로 한 것이다. 닛산의 ‘성공’을 대표했던 옷파마 공장은 이제는 닛산의 ‘위기’를 상징하는 곳이 됐다.
실제로 옷파마역 일대의 상점가는 낡았고, 그마저도 한 집 건너 한 집은 문을 닫은 공실이었다. 역이 자리 잡은 마을 중심가에서도 활기찬 기운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 도쿄돔 36개 들어갈 규모
닛산 옷파마 공장의 정문. 요코스카=황인찬 특파원 hic@donga.com역에서 택시를 타고 5분 거리의 공장으로 향했다. 70대 택시 운전사는 “예전에는 역 앞에 사람이 많았지만 최근 닛산의 상황이 나빠지면서 사람들이 점점 떠났고, 지역 경기도 나빠졌다”며 “공장이 문을 닫으면 지역 경제가 더 안 좋아질 것 같아 걱정이 크다”고 토로했다.
이날 공장을 찾은 건 앞서 신청한 견학 프로그램의 참가 승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만 공장 내부를 볼 순 없었다. 안내하는 닛산 직원은 “내부 견학은 올 6월 말을 끝으로 중단됐다. 공장 설비를 조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세한 설명은 안 했지만 역시 공장 폐쇄와 무관하지 않은 듯 보였다.
이번 견학 프로그램은 공장 내 ‘게스트 하우스’란 홍보관에서 우선 닛산의 역사와 생산 과정을 설명하는 영상과 강연을 들은 뒤 자동차 모형을 통해 구동 원리를 이해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안내자는 “옷파마 공장은 닛산의 ‘마더 팩토리(mother factory)”라고 강조했다. 오늘날의 닛산을 만든 모체(母體) 공장이라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실내 강연 후 외부 시설을 둘러볼 때는 버스를 탔다. 그도 그럴 것이 전체 공장 부지가 169만9000m²로 도쿄돔 36개와 맞먹는다. 버스에 탑승하자 안내자는 “공장 내부는 물론이고 외부 또한 사진 촬영이 안 된다. 휴대전화를 가방이나 주머니 안에 넣고 꺼내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버스로 몇 분 달리자 드넓은 도쿄만이 보이고 공장 안에 있는 항만 시설이 나타났다. 생산한 차를 바로 배에 선적할 수 있는 이 공장의 자랑거리다. 이날은 마침 신차를 선적하는 날이라 전문 드라이버들이 차를 줄지어 운전해 선적하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
안내자는 “견학을 와도 실제 선적 시간과는 안 맞을 때가 많다. 여러분은 매우 운이 좋은 것”이라고 했다. 한껏 분위기를 띄운 안내자는 ‘공장 내 다리’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공장이 넓다 보니 중간에 일반도로가 있다. 신차는 아직 번호판이 없어서 일반도로를 달릴 수 없다. 그래서 일반도로 위에 다리를 놓아 신차들을 항구로 옮길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일반도로 위에 설치돼 공장과 공장을 잇는 구름다리가 보여 신기했다. 하지만 주요 시설들은 이미 만들어진 지 60년이 넘은 상황. 공장도, 항만도, 다리도 녹이 슬고, 빛이 바랬다. 경쟁력을 잃은 닛산의 현실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일본 닛산 옷파마 공장 정문 옆에 있는 자동차 판매점 창문에 ‘힘내라 닛산, 힘내라 옷파마’ ‘닛산은 힘이 있다. 일어나라 닛산!’ 등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요코스카=황인찬 특파원 hic@donga.com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했지만, 닛산의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닛산은 지난달 30일 올 2분기(4∼6월) 실적을 공개했는데 1157억 엔(약 1조9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일본 국내 시장은 물론이고 미국, 중국 시장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일본 내 판매량 톱10 자동차 가운데 닛산 제품은 하나도 없었다. 특히 닛산의 주력 소형차이며 옷파마 공장에서 주로 생산된 모델인 ‘노트’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18% 감소한 4만3308대 판매에 그쳤다.
닛케이는 “닛산은 2022년 11월 ‘세레나’를 마지막으로 신차를 내놓지 않았다. 판매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렇게 실적이 안 좋은데 인력과 설비는 그대로이니 공장 가동률은 떨어지고, 경영 상황은 더 암울해지고 있는 것이란 분석도 많다.
이반 에스피노사 닛산 사장은 지난달 15일 기자회견에서 “2027년까지 국내외에 있는 총 17개 공장을 10개로 줄이고 전 직원의 약 15%인 2만 명을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전통적으로 인력 감축에 매우 신중한 일본 기업 문화를 감안할 때 에스피노사 사장의 당시 발표는 일본 안팎에서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옷파마 공장 폐쇄도 이 구조조정의 일환이다. 닛산은 옷파마 공장의 생산 기능을 자회사인 규슈 공장으로 이관하고, 인근 쇼난 공장 또한 2026년 말 문을 닫기로 했다.
닛산은 추후 옷파마 공장 활용을 두고 전기차를 생산하는 대만 폭스콘(훙하이정밀공업)과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옷파마 공장은 2010년 전기차 ‘리프(Leaf)’를 양산하며 테슬라보다 7년 앞서 전기차 양산 체계를 갖추며 주목받았지만, 이제는 대만 전기차의 생산 기지로 바뀔 수도 있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닛산 경영진은 옷파마 공장 폐쇄를 발표하며 “매우 큰 아픔을 동반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기업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것. 옷파마 공장 정문 옆에 있는 닛산 옷파마지점의 쇼윈도에는 ‘힘내라 닛산, 힘내라 옷파마’ ‘닛산은 힘이 있다. 일어나라 닛산!’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닛산의 생존에 대한 간절함이 느껴졌다.
● 직원들은 고용 불안, 상인들은 지역 경제 걱정
옷파마 공장에는 약 24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닛산은 “2027년 말까지는 직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향후 계획은 노조와 협의하겠다”고 했다. 사실상 2028년 이후의 고용은 불안해진 상황이다.
공장 앞에서 만난 닛산 직원들도 이를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한 30대 남성 직원은 “회사는 고용을 유지한다지만 앞으로 모르는 일 아니냐”고 토로했다. 2년 뒤 정년 퇴임을 맞는다는 한 직원은 “나는 곧 퇴직이지만 젊은 직원들은 공장 설비가 이전되는 규슈로 옮겨야 할지, 규슈로 가서 계속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요코스카 지역 사회도 걱정이 크다. 이 공장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위축된 지역 경제가 더 움츠러들까 상인들도 걱정하고 있다. 옷파마역 앞의 미용실 직원은 “닛산 직원들이 머리를 자르러 많이 왔었다. 그런 공장이 사라진다니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 기업이든 어느 기업이든 새로 들어오고 다시 지역 경제가 활기를 찾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