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지역에 200mm 폭우가 쏟아진 3일 밤, 광주 북구 운암시장도 순식간에 물에 잠겼다. 지난달 중순에도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었던 상인들은 오후 10시 무릎까지 차오른 물을 보며 속이 바짝 타들어갔다. 그때 인근 주민과 상인들이 하나둘 거리로 나서더니 빗물받이를 막고 있던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흙탕물에 빗물받이 위치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시민들은 맨손, 맨발로 쓰레기를 걷어내고, 부유물을 치웠다. 그렇게 1시간 20분, 골목에 고였던 흙탕물이 소용돌이치며 빠지기 시작했고 운암시장은 두 번째 침수 위기를 넘겼다. 시민들은 “그저 동네가 또다시 잠겨선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운암시장은 시민들의 손으로 위기를 넘겼지만 다른 곳은 그렇지 못했다. 광주 북구 등 많은 지역이 지난달에 이어 보름 만에 또다시 물에 잠겼다. 문제는 이런 침수가 올해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피해 주민들은 “폭우만 오면 침수 피해가 반복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일부는 광주시와 자치구를 상대로 민사 소송과 형사 고발을 예고했다. 하천 범람을 막는다며 차단벽과 방수막을 설치해 놓고 정작 배수 관리에는 소홀해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다.
도심 홍수는 결국 배수 문제다.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로, 시멘트로 포장된 인도는 비가 오면 물을 담는 거대한 돌그릇이 된다. 빗물받이와 배수로가 제 역할을 해야만 물이 빠져나갈 수 있다.
빗물받이와 배수로는 관리가 조금만 소홀해도 쉽게 막힌다. 시간이 지나면서 흙과 오물이 퇴적되고, 무단 투기된 담배꽁초나 쓰레기들이 쌓이기 때문이다. 2022년 강남역 침수 사태를 겪은 서울시는 56만 개가 넘는 빗물받이를 관리하기 위해 ‘빗물받이 전담 관리자’ 100명을 두고 있다. 이들이 1∼3일 사흘간 1만9963곳을 점검해 6795곳을 청소했고, 1078곳에선 누군가 막아둔 덮개를 제거했다. 빗물받이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경고 스티커와 ‘옐로박스’ 띠도 만들었다. 25개 자치구에 특별 순찰반도 운영 중이다. 올해 서울에서 침수 피해가 적게 보고된 데는 이 같은 기본 관리도 한몫했을 것이다.
많은 재난은 ‘기본을 지키지 않아서’ 일어난다. 2023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가 잠기며 14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도 부실하게 쌓은 미호천 제방이 폭우에 무너지며 발생했다. 얼마 전 이 사건으로 복역 중이던 감리단장이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다. 그를 포함해 처벌받은 누구도 도면 없이 임시로 만든 둑 하나가 그렇게 많은 생명을 앗아갈 줄은 몰랐을 것이다.
물론 인간의 대비만으로 자연재해를 막을 수는 없다. ‘스콜성 강우’는 더 빈번하고 강해지고 있다. 도시 인프라가 이런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라도, 막힌 곳을 뚫고 물길을 열어두는 도시 치수의 기본은 철저히 지켜야 한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 사고가 반복된 SPC 공장을 찾아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사고가 발생하는 건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라며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침수가 반복된다면 그 역시 피해를 용인하는 일이다. 자연만 탓할 일이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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