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어째서 이토록 가난하고 뜨거운가[고수리의 관계의 재발견]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7일 2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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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리 에세이스트
고수리 에세이스트

불볕더위로 푹푹 찌는 여름. 쨍쨍한 거리를 걸으면 온몸으로 뙤약볕을 받아내는 사람들이 눈에 밟힌다. 청소하는 미화원과 짐 옮기는 택배기사, 공사하는 인부들과 배달하는 라이더들.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떠올라서 뭉클.

해마다 날씨가 악독해지는 걸 실감한다. 나는 일기예보가 아주 징글징글하다. 여름엔 폭염이 기승이고 겨울엔 한파가 맹렬하다. 폭우도 폭설도 황사도 미세먼지도 징글징글하게 싫어 죽겠다. 혹독한 날씨가 휩쓸고 가면, 아버지는 길게 늘어선 세차 차량을 닦느라 어깨가 부서져라 아파질 테니까. 땀 흘리며 일하는 노동자에겐 날씨가 작업복, 모든 날씨를 겪어내며 일한다. 정직한 땀의 대가처럼 사람도 정직하게 쇠해진다. 우리 아버지가 나날이 노쇠해진다.

사랑한다, 자랑스럽다 다정한 말들을 아무 때고 건네시는 분. ‘아버지’란 말이 낯설었던 나는 시아버지를 만나고서야 아버지의 사랑을 처음 받아보았다. 팔순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평생 노동하며 살았다. 휴일도 없이 새벽 5시부터 몸을 움직여 일하고 저녁 8시면 잠드는 단조롭고 성실한 삶. 그나마도 나이가 들수록 곤히 주무시지 못한다. 얕은 잠을 뒤척이다가 새벽에 일터로 나가신다. 아버지 일터의 시간을 나는 상상할 수 없고, 일터의 날씨만 어렴풋이 겪어볼 뿐이다. 그래도 일할 수 있기에 얼마나 감사하냐는 아버지가 짠하다.

마주치는 노동자들에게서 아버지를 본다. 굽은 등과 붉어진 뒷목, 그을린 팔뚝과 우둘투둘한 손마디는 오래 산 고목 같다. 먼지와 기름과 때와 땀에 찌든 그들에게선 볕과 비와 눈과 바람 냄새가 난다. 성실히 살아온 이들의 모양과 냄새는 너무도 인간적이어서 내가 쓰는 곱상한 글과는 다르다. 나는 그게 늘 부끄럽다. 폭염경보에 달궈진 거리를 걷다가 전화를 걸었다. 아버님, 힘드시죠?

“더위랑 싸우고 있지. 너무 덥지?” “오늘 37도까지 올라간대요. 힘드셔서 어째요.” “다들 힘든데 뭐. 아부지는 괜찮아. 수리도 힘들지?” “제가 뭐가 힘들어요. 물 많이 많이 드셔야 해요.”

전화를 끊자, 눈도 코도 얼얼하게 맵다. 힘드시죠? 여느 때처럼 묻는 나, 아무래도 부족하다. 그보다 뭔가를 더 해드리고 싶은데 표현도 방법도 잘 모르겠다. 갈비탕이라도 더 보내드려야 할까.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울컥 치미는 걸 꿀꺽 삼켰다. 돈 많이 벌고 싶다. 그 돈으로 사랑하는 이들이 더는 날씨랑 싸우지 않으면 좋겠다. 하루라도 편히 쉴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글만 써서는 돈 벌기가 어려운데…. 작업실 들어가기가 주저스러웠다. 시원한 에어컨을 쐬며 쾌적한 책상에 앉아 글을 쓰면서도 바쁘다 힘들다 징징거리는 내가 죄스러워서. 생각한다. 생각해야 한다. 나는 어떤 글을 써야만 할까.

맴맴 맴맴. 매미들 울어대는 나무 그늘 아래로, 한 걸음 뗄 자신이 없었다. 한동안 고스란히 뙤약볕을 맞고 서 있었다. 한 발짝도 피할 데가 없었다. 슬픔은 어째서 이토록 가난하고 뜨거운가. 그날만은 세상이 징글징글하게 싫어서, 뙤약볕 아래 서서 맴맴 맴맴. 나는 매운 울음만 삼켰다.

#슬픔#불볕더위#여름#아버지#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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