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들의 여름 미식 풍경[정기범의 본 아페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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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범 작가·‘저스트고 파리’ 저자
정기범 작가·‘저스트고 파리’ 저자
올 6월 중순, 섭씨 38도에 육박하는 무더위가 프랑스 파리를 강타했다. 다행히 폭염은 찰나에 그쳤다. 이후로는 20∼25도의 선선한 날씨가 계속되는 중이다. 지중해와 맞닿은 남부 프랑스 프렌치 리비에라에서는 해수욕을 즐기는 인파가 몰리고 있다. 반면 북부 노르망디 해변을 찾은 이들은 차가운 바닷물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프랑스의 여름이 조용히 저물고 있는 듯한 풍경이다.

여름을 그저 흘려보내기 아쉬운 마음에 파리 생제르맹 데 프레의 한 카페를 찾아 프랑스인들이 즐기는 여름 식사를 음미해 봤다. 프랑스인들의 여름 식사는 식전주(Apero)로 시작된다. 아페롤 스프리츠, 브르타뉴 드라이 사과주, 샴페인 등으로 가볍게 입맛을 돋운 뒤 본격적인 식사로 넘어간다. 전식으로는 잘 익은 멜론과 프로슈토(생햄)를 곁들인 생햄 멜론(Melon au jambon cru), 얇게 저민 생연어를 레몬과 허브, 아보카도 등과 함께 즐기는 상큼한 생선 타르타르(Tartare de saumon), 스페인 안달루시아에서 유래한 차가운 토마토 수프 가스파초(Gaspacho) 같은 메뉴가 인기다.

식욕을 깨우는 차가운 전채 요리 이후에는 숯불이나 철판에 구운 고기와 생선을 신선한 샐러드와 함께 내는 본식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고기 요리가 부담스러운 이들은 샐러드를 식사 대용으로 선택하기도 한다. 특히 카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니스식 샐러드(Salade nicoise)는 여름철 인기 메뉴다. 삶은 달걀, 참치, 올리브, 토마토, 안초비, 감자 등이 듬뿍 들어간 이 샐러드는 땀으로 빠져나간 염분을 보충함과 동시에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해안가 레스토랑에서는 홍합과 감자튀김(Moules frites)을 판매하는 곳이 많다. 푸짐한 홍합과 바삭한 감자튀김을 곁들인 이 메뉴는 여름 바다를 배경으로 한 프랑스 식사의 대표적인 즐거움이다.

프랑스 여름 식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한 잔의 로제 와인이다. 붉은 태양 아래 은은한 분홍빛을 띠는 로제 와인은 여름철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사랑받는 음료 중 하나다. 가벼운 음식들과 조화를 이루며 식사의 끝을 장식한다. 시원하고 가벼우며 은은한 과일 향이 매력적인 로제 와인은 테라스에서 즐기는 한 끼 식사의 완벽한 동반자다. 딸기, 체리 같은 붉은 과일 향부터 자몽, 오렌지 등의 감귤류 아로마, 그리고 가벼운 미네랄리티가 어우러진 로제 와인은 무더운 여름날 입맛을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가 소유한 샤토 미라발(Chateau Miraval)의 로제도 훌륭하지만, 개인적으로 보다 깊고 구조감 있는 로제를 찾는 이들에게는 방돌(Bandol)의 도멘 템피에르(Domaine Tempier)나 샤토 피바르농(Chateau Pibarnon)을 추천한다. 무르베드르 품종으로 만든 이 로제는 육류나 지중해 요리와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짧은 파리의 여름이 서서히 저물어가는 가운데, 프랑스인들은 일상 속 식사를 통해 계절을 보내는 법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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