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래: 조선 후기 조재삼(趙在三)이 지은 송남잡지(松南雜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조선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황희(黃喜)’는 재상이었으나 청렴한 생활을 하다 보니 끼니가 부족하여 오래도록 굶주려서 얼굴이 누렇게 뜬 모습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은 황희의 생활을 안쓰럽게 여겨 도와줄 방법을 생각하다 하루 동안 남대문으로 들어오는 물품을 모두 사서 황희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당일 큰비가 내려 들어오는 물품이 없었습니다. 저물녘에야 계란 한 꾸러미를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어 그 계란을 사서 황희에게 줬습니다. 그런데 그 계란도 모두 곯아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골(骨)’은 ‘곯다’의 음을 따서 쓴 것이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 생각거리: 서거정(徐居正)이 지은 조선시대 설화집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학사(學士) 강일용(姜日用)의 집이 가난하다’고 하니, 왕이 그를 부유하게 해 주고자 도성의 4대문에 명령을 내려 ‘하루 동안 도성 안으로 들어오는 재물을 모두 그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황희 정승 이야기와 유사하게 이 이야기에서도 그날 비가 많이 내려 사방에 통행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계란을 몇 개 가지고 4대문으로 들어와 그 계란을 사서 강일용에게 줬으나 그조차도 상한 계란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복이 없는 자를 ‘강일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속담에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와 비슷한 의미의 성어입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