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우경임]‘권력형’ 재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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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임 논설위원
우경임 논설위원
선출되지 않는 권력인 대통령의 부인이 반클리프아펠, 샤넬, 디올 등 명품을 받고 공직을 넘기거나 예산을 줬다고 한다. 그 뒤에는 무속인이 있었다. 2025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곤 믿기지 않는다. 여성, 명품, 종교 등 흡입력 있는 줄거리에 ‘눈떠 보니 후진국’이라는 자괴감이 더해지며 김건희 여사 의혹은 국민적 분노를 불러왔다. 그에 비해 남성, 주식, 정책 등 건조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인 이춘석 의원의 차명 주식 거래는 금세 분노가 휘발된 것 같다. 하지만 선출된 권력의 사익 추구가 우리 사회에 덜 해롭다고 할 수 있을까.

권력이 돈을 탐할 때

이 의원의 차명 주식 거래 의혹은 고약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4일 오후 그는 국회 본회의장에 있었다. 우원식 국회의장 발언 중 고개를 푹 숙인 채 주가 호가창을 띄워 네이버 주식을 5주씩 거래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본업을 팽개치고 주식 거래를 한 것부터 성실 의무 위반인데 알고 보니 보좌관 명의 주식 계좌였다. 그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도중에도 보좌관 명의로 주식 거래를 하다 들킨 적이 있다. 만약 차명 거래로 확인된다면 국회 법사위원장이 금융실명제법과 공직자윤리법을 대놓고 위반한 셈이다.

주식 거래 내용은 더욱 놀랍다. LG CNS 420주와 네이버 150주, 모두 6400만 원어치를 신용 매수했다. 지난해 임금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약 373만 원) 17개월 치를 ‘빚투’한 것인데 보통 사람이라면 함부로 베팅할 수 없는 돈이다. 그는 인공지능(AI) 국가대표 기업 발표 직전에 이들 주식을 매수했다. 국정기획위원회 AI 정책 담당 분과장이었으니 사전에 정보를 입수했을 것이란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지금까지 정황만으로도 이해 충돌 소지가 다분하고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다면 자본시장법 위반이 될 수도 있다.

경찰 수사를 받는 이 의원은 “보좌관 전화를 잘못 들고 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신분증과 다름없는 휴대전화를 바구니에 두고 같이 쓰기라도 한다는 건가. 만약 거짓말이라면 보좌관은 이름까지 뺏긴 갑질을 당한 셈이다.

선출된 권력의 사익 추구 더 위험

이 의원은 주식 창을 여는 수고라도 했지만 새 정부 인사청문회 과정을 보면 돈이 제 발로 찾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배추 농사에 2억 원을 투자하고 미국 유학 2년간 매달 450만 원을 받았다. 연간 수익률이 27%다. 축의금, 부의금, 출판기념회로는 수억 원을 벌었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2023년 5곳, 2024년 4곳의 기업과 대학에서 약 1억5000만 원 정도의 연봉을 받았다. 김 총리와 권 장관 모두 십수 년간 공천을 못 받거나 낙선을 했는데도 일종의 명예로 그만한 돈을 벌어들였다.

낙선 의원도 이런데 현직 의원은 어땠을까.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서 사퇴하면서 묻혔지만 민주당 강선우 의원의 남편이 보유한 주식도 석연치 않다. 강 의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이었던 2020년부터 그의 남편은 바이오 업체 감사로 일했고 2022년에는 스톡옵션 1만 주를 받았다. 재산 신고에도, 인사청문회 자료에도 누락된 주식이다. 강 의원은 “스톡옵션 거부 의사를 밝혀 취소된 줄 알았다”고 해명했다. 정부 규제에 민감한 바이오 업체가 국회의원의 남편을 월급도, 주식도 주지 않고 무보수로 부린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할 자리에서 사익을 좇기 시작하면 정책 결정은 왜곡되고 줄을 대려는 반칙이 난무한다. 권력을 쥐고 돈을 벌기로 작정하면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이를 스스로 경계할 수 없다면 제발 경계할 수밖에 없도록 장치를 만들라. 이번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 ‘권력형 재테크’를 엄벌하는 선례를 남겨야 하는 건 물론이다.

#대통령 부인#명품 수수#무속인#차명 주식 거래#미공개 정보 이용#금융실명제법 위반#공직자윤리법#권력형 재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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