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을 억제하는 비만치료제의 역사는 ‘삭센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4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최초의 비만치료제 ‘암페타민’을 비롯해 대부분의 비만약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감정 기복을 키우는 등 부작용이 작지 않았다. 그런데 2014년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출시한 삭센다는 음식을 먹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GLP-1)에 작용해 식욕을 조절하는 원리다. 이후 등장한 ‘기적의 비만약’들이 모두 같은 원리의 주사제이다.
▷GLP-1은 인슐린 분비를 도와 혈당을 떨어뜨리고 위장 운동 속도를 늦춰 음식물이 장으로 천천히 이동하게 한다. 삭센다는 원래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는데 체중 감량 효과가 뛰어난 사실이 확인되면서 비만약으로 쓰이게 됐다. GLP-1은 작용 시간이 짧아 밥때가 되면 배가 고파지지만 삭센다를 주사하면 GLP-1 작용 시간이 약 13시간, 삭센다 후속으로 2021년 같은 제약사에서 나온 위고비는 170시간으로 길어진다. 삭센다는 하루 한 번, 위고비는 주 1회 주사로 식욕 억제 효과를 볼 수 있는 셈이다.
▷위고비 독주 체제를 양강 구도로 재편하고 있는 제품이 효과는 더 좋으면서 값은 싼 ‘마운자로’다. 미국의 일라이릴리가 2023년 출시한 마운자로는 식욕 억제와 혈당 개선 효과를 동시에 볼 수 있다. 허리둘레 감소 효과가 위고비는 평균 13cm, 마운자로는 20cm 정도다. 마운자로는 최근 국내에도 출시됐는데 4주분이 용량에 따라 28만∼52만 원 선. 80만 원까지 치솟았던 위고비 가격도 40% 떨어졌다. 위고비 주성분에 대한 독점권이 2030년대 초 만료돼 복제약이 나오면 가격은 더 떨어질 전망이다.
▷미국에선 식당 메뉴 사이즈가 줄어들 정도로 위고비와 마운자로 투약이 보편화되고 있다고 한다. 모두 주 1회 허벅지나 복부에 주사로 투약한다. 흔하게 나타나는 부작용이 구토, 복부 팽만, 변비다. 위고비 국내 판매가 시작된 지난해 10월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보고된 부작용 사례는 49건. 약물 투여를 중단하면 식욕이 돌아와 1년 이내 빠졌던 체중이 다시 늘어난다. 약물 투여 기간에 식습관을 개선하고 운동량을 늘려야 한다.
▷비만은 암과 당뇨를 비롯해 수많은 질병을 유발하는 ‘관문 질환’으로 세계보건기구(WHO)는 1997년 비만을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공인했다. 비만 인구는 2035년 19억1400만 명으로 늘어나고 비만약 시장도 2040년엔 2800억 달러(약 389조 원)로 지금보다 10배 넘게 커질 전망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먹는 비만약, 근육은 그대로 두고 살만 빼주는 비만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모든 다이어트는 실패로 끝난다’는 경험칙을 깨는 꿈의 비만약이 나올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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