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언제 그랬냐는 듯 침묵
이젠 국힘 일부가 北 방사능 오염 주장
非과학 주장은 정치 저질화의 주범
악행은 청동에 새기듯 기록·기억해야
김승련 논설실장
지난주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이 방한했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조현 외교부 장관을 만나 2011년 원전 사고가 났던 후쿠시마 인근 8개 현(縣)에서 잡은 해산물 수입금지를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우리 외교부는 두 장관의 면담 자체를 공개하지 않았는데,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이 일본 언론에 설명하면서 알려졌다.
이처럼 ‘후쿠시마’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이고, 이재명 정부로선 드러내고 싶지 않은 무엇이다. 공론장에선 빠르게 잊혀지고 있다. 일본은 2년 전 8월 이맘때 후쿠시마 원전 옆 초대형 탱크에 담아뒀던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다. 3중수소를 제외한 대부분 방사성 물질을 걸러냈고, 국제사회의 검증을 마쳤다. 일본은 ‘처리수’로 명명했고, 우리는 ‘오염수’로 불렀다.
방류가 시작될 즈음 한국의 더불어민주당은 “핵 테러다” “왜 윤석열 정부가 (안전하다는) 일본 정부 논리를 설명하느냐”라며 한일 양국 정부를 비판했다. 놀라운 점은 2023년 홍역을 치른 뒤에도 방류가 계속됐는데도, 작년과 올해 이 사안을 입에 올리는 민주당 인사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국민 건강권을 위협한다며 전국의 횟집에서 손님이 급감했는데, 이젠 망각해도 괜찮은 일이 돼 버렸다. 영원불변한 과학적 진리라곤 누구도 말 못 하지만, 지금 기준으론 2년 전 비판이 사실과 동떨어졌다는 걸 자인하는 것 아닌가. 이런 무책임이 없다.
국민의힘은 ‘일본 옹호 세력’으로 매도된 피해자였다. 그런데 올여름 들어 북한의 방사성 폐기물이 우리 바다를 오염시킨다는 주장을 꺼내든 의원들이 생겼다. 황해북도 평산의 우라늄 정련공장에서 핵 폐수 방류 우려가 있다며 “예성강을 통해 한강 하구로 흘러들어 왔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근거는 미국 인공위성이 찍은 공장 주변의 물 색깔이 검게 변한 사진이었다. 방사성 물질이 위성 사진에 찍히는 것인지 의문이지만, 2019년 첫 문제 제기 이후 정부의 서해 해역 조사 결과, 문제가 없었다. 국민의힘 일각의 이런 문제 제기는 2년 전 민주당의 무리한 주장에 대한 되갚기 같은 인상을 준다. 충분한 근거 없이 비슷한 주장을 펴는 데 여야가 없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두 사례는 낡은 정치 공방이 우리를 휘감고 있음을 확인해 준다. 조직이 망가지려면 말이 먼저 망가진다고 했다. 여의도에 정치적 비판이야 필요한 것이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정치적 비판은 옳고 그름이 칼로 무 자르듯 구분되는 게 아니다. 비판이 며칠 지속되다 보면 ‘뭔가 잘못한 거 같다’는 인상을 남기는데, 이게 남는 장사로 보는 구조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남의 말을 믿고 싶어 하는 심리를 정치인들이 이용하는 것 아닌가. 취재 현장에서 황당한 주장에 관여한 여야 당직자들에게서 “야당 정치 원래 이렇게 하는 거다”라는 말을 듣고 기가 찼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정치는 왜 한 발짝도 나아지지 않는 걸까. 지금 정치 지형에선 경선, 여론조사, 댓글 등에서 영향력이 큰 열성 지지층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올바른 언어로 사리와 이치에 맞는 정치 못지않게 자신들이 싫어하는 정치인을 몰아세우는 걸 기대하고 있는 걸 직감한다. 그래만 준다면 시쳇말로 억까(억지 비판)도 용납하는 기류가 있다. 유권자 책임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무논리 정치가 끼치는 해악은 다대하다. 정치 저질화를 부르고, 기대치를 더 낮춘다. 썩 괜찮은 이들이 정치에 참여하겠다는 생각 자체를 차단해 버린다. 공공선을 향하는 미래 리더의 싹을 자르는 행위다. 이런 현상은 지난 10년 동안 트럼프-바이든-트럼프 당선을 지켜본 미국에서도 비슷하게 감지된다. 미 언론의 칼럼에선 “우리 미국이 어쩌다가…”라는 한탄의 글이 종종 등장한다. “최고의 인재가 더 이상 워싱턴으로 오지 않는다”는 통찰을 힐러리 클린턴이 외신기자들 앞에서 내놓은 적이 있다.
결국 잘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선행은 물로 기록하고, 악행은 청동에 새긴다고 했다. 본래 좋은 일은 쉽게 잊힌다는 뜻의 말이지만, 우리가 목도하는 수준 낮은 비과학적 주장을 누가 언제 왜 폈는지 정확히 기록하고, 시시때때로 되새겨 공론화해야 한다. 이런 기억의 되새김질이 움직이지 않는 룰이 된다면 ‘알면서도 하는 황당 정치적 주장’은 줄어들 수 있다. 후쿠시마 수산물 첫 금수 이후 14년이 흘렀다. 일본과 우리 관계에 비춰 수입 재개가 쉬운 결정은 아니다. 하지만 영원히 갈 수는 없지 않나. 그때는 2023년 여름 몰과학적 주장을 편 정치인들은 2선으로 물러난 때여서 정확히 책임을 묻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도 기록하고 기억할 도리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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