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분야 출장자 유입 10% 늘자, 해당 산업 성장률 평균 0.6% 상승
국가 단위 산업지형 바꾸는 동력돼
두 지역 오갈 출장 비용 낮아지니, 과학자 공동연구 30…110% 늘어
우수 연구자 지리적 제약 넘게 해
《해외 출장의 나비 효과
많은 이들이 여름 휴가철 해외여행에 나선다. 연구자들에게는 이때가 학회 참석 등을 위한 출장의 시기다. 해외 출장에는 상당한 체력, 시간, 재정적 비용이 든다. ‘과연 이 비용을 감수할 만한가’ ‘온라인 미팅이 낫지 않나’라는 고민이 뒤따른다. 물론 직접 만나서 나누는 대화나 계획에 없던 만남에서 비롯되는 아이디어와 협업 기회는 상당하다. 하지만 출장의 긍정적 효과를 증명할 수 있을까? 두 편의 최신 연구는 대규모 데이터를 통해 답을 제시한다.》
박재혁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첫 번째 연구(연구①)는 해외 업무 출장이 국가 간 지식 전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기업용 결제 카드사의 데이터를 활용해 2011∼2016년 전 세계 업무 출장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들은 출장자들이 자국의 산업 노하우를 목적지 국가에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연구팀은 특정 산업의 전문성을 가진 출장자가 특정 국가에 얼마나 유입되는지를 나타내는 ‘출장 양적지수(TQI)’를 개발했다.
분석 결과 특정 산업 분야의 해외 출장자 유입이 10% 증가할 때, 목적지 국가의 해당 산업 성장률(기업체 수 기준)이 평균 0.6% 높아졌다. 이는 업무 출장이 비단 경제 성장의 결과가 아니라 지식 확산을 통해 성장을 유발하는 원인임을 시사한다. 또 출장은 무역, 해외직접투자, 이민 등 다른 교류 형태보다도 산업 성장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연구는 한국을 세계적인 ‘지식 수출국’ 중 하나로 꼽으며, 이러한 지식 전파의 구체적인 경로를 중국으로의 출장 흐름을 분석해 보여줬다. 당시 중국으로의 업무 출장이 가장 잦으며 눈에 띄게 성장한 산업 분야는 제지 기계, 카본지 및 잉크리본, 외국은행 지점이었는데 이는 모두 이웃한 한국의 주요 경제활동 분야와 일치했다. 이는 한국의 출장자들이 자국의 특화된 산업 노하우를 중국에 직접 전파하며 관련 산업의 성장을 촉진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연구는 ‘외부 노하우지수(OKI)’를 통해 한국의 영향력을 수치로 제시했다. 만약 한국이 해외 출장을 전면 중단할 경우 전 세계 경제가 0.095% 위축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이 충격은 대부분 동아시아에 집중되며, 중국의 특정 지역은 1.6%가 넘는 경제적 손실을 볼 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 출장이 국가 단위의 산업지형을 바꾸는 거시적 동력임을 보여준 것이다.
두 번째 연구(연구②)는 출장 비용의 감소가 과학자들의 협업 네트워크를 재편하고 연구의 질을 높이는 미시적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연구팀은 미국 저비용 항공사가 새 노선에 취항하는 사건을 일종의 ‘자연실험’으로 활용했다. 특정 두 도시 간 저비용 항공편이 생기면 해당 구간의 항공료가 평균 17∼19% 하락하면서 출장 비용이 급격히 감소하는데, 이 변화가 두 지역에 위치한 과학자들 간 공동연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 것이다. 분석에는 1993∼2012년 미 화학 분야 교수들의 공동논문 데이터를 활용했다.
분석 결과, 저비용 항공사 노선 취항으로 출장 비용이 낮아지자 두 지역 과학자들 간 공동연구 건수가 기존보다 30%에서 최대 110%(1.1배)까지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흥미롭게도 협업이 양적으로 늘어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출장 비용 감소는 더 혁신적이고 파급력이 큰 연구를 촉진했다. 두 지역 간 공동연구는 논문 인용 횟수가 더 높은 ‘고품질’ 연구, 새로운 키워드를 사용한 ‘혁신적’ 연구, 그리고 서로 다른 세부전공을 융합하는 ‘학제 간’ 연구로 발전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변화가 연구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역의 우수 연구자들에게 더 큰 혜택을 줬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저렴해진 항공료 덕분에 지리적 한계에 갇혀 있던 유능한 과학자들이 외부의 우수 연구자들과 손잡을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기존에 진행하던 생산성 낮은 동료들과의 지역 내 협업을 줄이고, 원거리의 새로운 파트너와 더 생산적인 협업을 시작하는 현상도 관찰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우리는 원격근무와 화상회의의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동시에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는 것의 중요성 또한 절감했다. 두 연구는 이러한 경험적 깨달음을 데이터로 증명한다. 앞으로 온라인 플랫폼이 더욱 활성화되더라도 새로운 관계 형성이나 예상치 못한 아이디어 교환 등에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연구① Coscia, Michele, Frank MH Neffke, and Ricardo Hausmann. “Knowledgediffusion in the network of international business travel.” Nature Human Behaviour 4.10 (2020): 1011-1020.
연구② Catalini, Christian, ChristianFons-Rosen, and Patrick Gaule. “How do travel costs shape collaboration?.”Management Science 66.8 (2020):3340-3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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