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남자 육상 200m 시상대에서 토미 스미스(가운데), 존 칼로스(오른쪽)가 흑인 저항운동을 상징하는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들어올린 모습. 동아일보DB
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운동선수의 생각은 경기장 안에서만 허용돼야 할까. 경기장 밖으로 넘어온 그들의 정치적 발언은 때로 소신 발언으로 박수받는다. 그러나 어설픈 치기나 망언으로 비난받기도 한다.
최근 양궁 국가대표 장채환(사상구청)과 파리 올림픽 3관왕 임시현(한국체육대)의 소셜미디어 게시물이 논란을 빚었다. 장채환은 21대 대선과 관련해 극우 진영의 부정선거 음모론을 반복적으로 게시했고, 임시현은 극우 성향 커뮤니티에서 주로 쓰는 표현을 사용했다. 특히 장채환은 대한양궁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소속팀과의 계약 해지까지 검토될 수 있다. 문제는 정치적 발언 그 자체인가, 아니면 발언의 내용인가.
운동선수의 정치적 목소리는 사회 발전을 이끌 수 있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남자 육상 200m 메달리스트인 흑인 육상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칼로스가 대표적 사례다. 각각 1위와 3위를 한 이들은 시상대에서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치켜들었다. 이들의 ‘검은 주먹’은 미국 흑인의 차별받는 현실을 전 세계에 알렸지만, 당시 “몰지각한 니그로의 추태” “스포츠 정신을 더럽혔다” 등 갖은 이유로 비난받았다. 은메달을 딴 호주의 백인 선수 피터 노먼도 이들에게 동조했다는 이유로 이후 국가대표가 되지 못하는 등 세 선수 모두 치명상을 입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올림픽 역사상 가장 용기 있는 선수로 평가받는다.
2016년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선수 콜린 캐퍼닉은 경기 전 미 국가가 울려 퍼질 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백인 경찰의 가혹행위로 숨진 조지 플로이드 사건의 후폭풍이 거세던 때라 인종 차별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동료들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는 퍼포먼스로 그의 시위에 동참했고,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비애국자”라고 이들을 맹비난했다. 결국 캐퍼닉은 선수 생명을 잃었다. 그러나 청소년 교육과 인권운동의 새 길을 열었다. 운동선수의 정치적 표현은 선수로서의 커리어를 앗아가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대 변화를 이끄는 불씨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운동선수의 경기장 밖 발언이나 행위가 항상 빛나는 것은 아니다. 미국프로농구(NBA) 선수들이나 남자 테니스 세계랭킹 1위 노바크 조코비치 등은 한때 코로나 백신 접종을 거부했는데, 이는 대중에게 백신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없는 불안감을 키우기도 했다.
운동선수가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행위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목소리가 사실 위에 서 있는가, 책임을 품고 있는가이다. 특히 사회적 반향이 큰 선수라면 개인적 분노와 편견에 바탕을 둔 발언을 무책임하게 해선 안 된다. 소외된 이웃,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고 우리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자신의 목소리를 활용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선수가 든 마이크는 일반인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크고 무겁다. 패스 하나로 경기를 바꾸듯, 그들의 말 한마디가 사회를 흔들 수 있다. 운동선수의 말과 행동은 또 하나의 플레이이자, 스포츠를 통한 사회적 참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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